나는 무슨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모자라보이고 생활능력이 없다거나 욕처럼 들리는 백치미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하며 일상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그렇게 보이는 것에 별 이의는 없다. 그런 면이 내가 가진 고유한 특성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나름대로 장점이 되기도 했다. 남자들에게는 스스로 어떤 보호자나 어른, 상대 우위의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만족해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나의 부족을 인정하고 내가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를 구체적인 형태로 예쁘게 돌려줄 줄 아는 장점이 있고 그것은 어느 정도 상호 호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주 이용을 당했다. 이건 사람들도 잘 모르고 나조차 인지가 쉽지 않았던 부분이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자주 이용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건 내 의지와 무관하고 실체와 무관하며 역량과 무관한 종류의 것이다. 얼핏 나는 연약해 보이고 불안해 보이고 균열이 있어 보일 때가 있다. 누군가의 구조 욕망이나 보호본능을 자극한 듯했다. 사람들이 내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내가 일면 그것을 유도하기도 하며 그게 진실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만이 가진 강박적인 어떤 나만의 심지랄까 곤조랄까 기조랄까, 도가니를 씹으면 잘 안 씹히는 질겅거리는 뭔가 그런 것이 있는데, 그걸 용케 알아보고 그에 기대거나 거기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영양소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 살다 보니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그건 내 별거 없고 심심해 보이는 허여멀건한 국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뒤적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쉽게 알 수도 없는데, 그걸 기어코 발견하고 씹어서 이빨자국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그 과정을 떳떳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를 요구조자 판타지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보다 더 불쾌하다. 그런 사람들은 나는 너를 통해 내게 결핍된 영양을 보충할 거야.라고 대놓고 내색하지도 않는다. 너의 영양을 취해갈게. 그래도 될까? 허락해 줄래? 너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내 연민을 자극하고 춥고 배고프다며 다가와 슬그머니 나를 착취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고요히 우러나고 있었다. 굳이 자극적인 양념도 휘적임도 필요 없이 홀로 그저 우러나고 있었다. 나를 들들 우리는 커다란 가마솥인지 뭔지가 내 골을 조용히 뽑고 있는데 굳이 밑에 가라앉은 말랑한 부분을 찾아 건져 올려 물고 뜯고 이빨 자국을 내는 사람들이 또 있다.
나는 강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보잘것없는 하찮은 사람도 아니다. 다만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떳떳한, 실존하는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의 기대가능성, 판타지, 대체재, 임시 출구, 비현실 통로 같은 역할은 거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