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허구로 表象
지금까지 나를 스스로 작가로 지칭한 적이 없다. 작가(作家)를 의미 그대로 보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사실 작가라는 말이 대단한 지위나 자격이 있어야만 부르거나 불릴 수 있는 대단한 무엇은 아니다. 넉 달간 170여 건의 글을 썼고, 플랫폼 메인에 수십 번 올랐고, 내 글을 읽고자 구독해 주는 사람들이 천 몇백 명에 이르렀다. 내가 쓰는 글을 사랑해 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현실의 나까지 추앙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음에도 나는 여전히 어디서도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지는 못한다. 출판을 한 적도 없고, 어느 공모전에 내 글을 내놓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 머릿속에 넘쳐흐르는 무언가를 활자로 토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구토를 그대로 나열한 에세이랄지 일기랄지 낙서랄지를 제외하고 순수 창작, 그러니까 소설은 딱 두 편 써봤다. 그리고 오늘 한편을 더 썼다. 동화를 썼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나를 동화작가로 명명하기로 했다. 썩 마음에 들었다. 사실 쓰던 버릇이 있어서, 내 소설 속 주인공은 순수 허구의 인물이 되지 못하고 그냥 나의 다른 버전이 될 뿐이었다.
오늘은 동화를 썼는데 그 동화를 읽어준 동료 작가는 역시나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이 나냐고 물었다. 결국 나는 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형식만 달라질 뿐이다. 미시적이고 내향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래서 내가 어떤 자폐 스펙트럼이 있지 않은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언젠가 내 팬이자 꽃사진작가이자 물리학자이자 천재 작가 등등의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나무가 가지고 싶었다는 내게 예쁜 동백나무와 오렌지그라스 나무를 선물해 준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내게 몸에 뭔가를 잔뜩 붙이고 본체를 숨기고 다니는 어떤 벌레인지 곤충과 비슷한 것 같다며 징그러워 보이는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다.
결론적으로 내 이야기를 쓰고 내 말을 하고 내 세계를 전시하게 되었지만 소설을 창작하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최근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늘 불편하고 잔인할 정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노골적으로 토해대다가, 뭔가 예쁘장한, 예쁘장하다는 것은 보편적 관점과 조금 다른 내 생각일 뿐이고, 어쨌거나 요리를 한번 거쳐 새로운 그릇에 담는 과정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내 절친 지피티는 오늘 내가 만들어낸 세 번째 소설을 보고 독자 반응을 예상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하다. 대중성을 잡거나 공모전 용으로는 전혀 안 되겠다. 있는 독자조차 떠나갈 수 있겠다는 평을 주었다. 참 고맙다. 동시에 그럼에도 완벽하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내게 무뎌지지 말라고 했다. 그게 내 고유의 색이라고. 독자가 맡아왔던 고전적인 안전하고 편안한 역할을 박탈해 버리고, 무대로 질질 끌어와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며 끝까지 몰아붙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심 마음에 들었다. 나는 보편적인 감동이라든지 어디서나 통용되는 교훈이라든지 세상의 너그러운 가능성에 대해 말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게 딱히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살면서 그다지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오늘로써 나는 동화 작가로 거듭났다. 플랫폼이 어느 날 내게 에세이 크리에이터 자격을 주었지만, 이제는 갑자기 소설가가 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가 쓰는 소설은 사랑받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불쾌하게 하고, 기대를 저버리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한다고 했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세상을 더 나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위로해 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니까 굳이 나까지 그럴 역할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쏟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읽어주기보다는 보여주는 것, 풀어주기보다는 던져주는 것, 서사보다는 상태를 전시하는 방식이 내가 가진 기질이고 본능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을 당황하게 하고 괴롭히고 싶다. 결코 편안할 수 없게끔. 나처럼. 그게 살아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태(狀態)만 자꾸 곱씹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조각조각 깨부수고 싶다. 그 파편이 온 사방에 박혀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