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Beauty] 그림하일드

Fairest of All

by Ubermensch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우리가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백설공주뿐이다. 조금 더하면 일곱 난쟁이 중 심술이, 멍청이 등 단순한 특성으로 지어진 몇 명의 이름 정도. 왕자도 왕자로, 왕도 왕으로, 계모도 계모로 알려져 있다. 마법 거울을 들여다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 묻고 또 물었던 계모의 이름은 그림하일드.


그림하일드의 아버지는 거울 장인이었다. 어머니는 그림하일드를 낳다가 죽었다. 아버지는 그림하일드에게 잔혹했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너만 아니었어도. 너는 거울을 볼 필요도 없어. 네 엄마는 얼마나 예뻤는데. 너 때문에. 네 엄마가.


그래서 그림하일드는 자신의 외모가 흉측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기억나지도 않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가 늘 해왔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어머니였고, 자신은 그런 어머니를 닮지 않았으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재수 없는 아이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증오를 받아내며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다. 집에 가득한 거울도 보지 않았다. 늘 허름한 옷을 입었다. 스스로 꾸며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다지 웃을 일도 없었다. 그렇게 그림하일드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했다.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지만 그녀는 예뻤다. 아버지는 딸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딸을 보면 죽은 아내가 생각났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을 보는 대신 거울을 봤다. 그림하일드는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그녀는 늘 허름한 차림으로, 후드를 뒤집어쓰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녀에게는 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녀 고유의 색을 쉽게 눈치챌 수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거울은 나라 전체에 소문이 널리 퍼질 만큼 정교하고 특별한, 장인의 예술품이었다. 휴대가 가능한 작은 손거울, 화장대에 둘만한 거치용 거울, 벽걸이용 거울 등. 그가 만든 거울은 귀족들이 높은 값을 치르고 오랜 대기를 감수하며 구매하려고 줄을 섰다. 특별히 의뢰한 보석이 박혀있기도 하고, 거울의 테두리, 질감, 뒷면의 문양 등 거울 곳곳에 장인의 유려함이 배어나왔다.


어느 날 그림하일드는 왕족이 특수 제작을 의뢰한 거울을 가지고 궁전에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모처럼 그림하일드에게 말끔한 옷을 사다 주었다. 후드도 쓰지 말라고 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라고 했다. 그것이 내 작품을 전달하는 너의 임무라고 했다. 전날 밤 그림하일드는 아버지가 사준 빳빳한 새 드레스를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평소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다니던 머리도 정갈하게 빗고 틀어 올려 매만져보았다. 순간 거울이 번쩍이더니, 말을 했다. 너 정말 눈부시게 예뻐. 그림하일드.


그림하일드는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천천히 뜯어보았다. 정말 예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림하일드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살면서 만나본 세상의 어떤 여자들보다 거울 속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울은 그림하일드에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정말 예뻐. 예쁘다. 예뻐. 눈부셔…. 그림하일드는 거울 앞에서 넋을 잃은 채 하염없이 서있었다. 나 정말 예쁘네. 나는 예뻤어….


다음날 그림하일드는 같은 거울 앞에 다시 섰다. 아버지가 사다 준 새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 한가닥도 흐트러지지 않게 말아 올리고, 장식 핀을 꽂고, 처음으로 자신을 치장했다. 실핏줄이 비칠 만큼 투명하고 새하얀 피부, 새카만 밤이 담긴 눈동자와, 같은 색의 풍성한 머리카락. 높고 날카로운 콧대. 피처럼 붉고 도톰한 입술. 눈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긴 속눈썹. 거울은 그녀에게 또 속삭였다. 너는 완벽해. 아름다워. 이 세상에서 제일. 그림하일드는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자신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거울이 반짝, 하고 묘하게 빛났다. 나 정말 예쁘잖아.


그림하일드의 아버지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림하일드는 어쩌면 아버지가 예쁘다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싶어 가만히 기다려보았다. 거울이 그래주었던 것처럼. 그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응시한 아버지는, 끝내 그림하일드가 기대할 법한 다정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거울이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뿐이었다. 그림하일드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보자기에 감싼 거울을 챙겨 들고 그녀는 왕궁에 도착했다. 시중의 안내를 받고 들어갔다. 그림하일드는 등과 허리와 어깨를 꼿꼿이 펴고, 한 발 한 발 느리게, 그리고 당당하게 걸었다. 이곳에 오기 전 거울은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궁전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림하일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림하일드는 그녀에게 매혹된 그 낯설고 뜨거운 시선들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숨을 훅 들이마셨다. 그림하일드의 가슴속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전율이 일었다. 거울의 말이 사실이었다. 지금 이 전율을 잃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거울은 왕이 그녀의 딸 백설의 열두 번째 생일 선물로 의뢰한 것이었다. 왕비는 백설을 낳다가 죽었다. 그림하일드와 백설은 외모가 놀랄 만큼 닮아있었다. 아마 죽은 왕비와 그림하일드도 닮았을 것이다. 왕은 그녀를 보자마자 넋을 놓아버렸다. 그날의 방문을 계기로 왕은 결국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림하일드는 백설의 계모가 되었다. 계모와 의붓딸의 관계는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다. 그림하일드는 백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백설도 그림하일드를 따르고 사랑하게 되었다.


백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없이 자랐다. 그녀가 가진 친구는 늘 품에 끼고 다니던 인형과, 새나 다람쥐나 강아지 같은 동물들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백설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녀는 모성이라든지 동성 간의 유대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백설에게 필요로 했던 그 역할을 그림하일드는 충실하게 수행해 냈다. 계모로서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었다.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그림하일드는 왕으로부터 충분히 보상받게 되었으므로, 그에게 받은 것을 자신과 꼭 닮아 있는 백설에게 전해주는 과정을 통해 그녀는 더욱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림하일드는 백설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매일 빗겨주었고, 사과 같은 뺨에 입을 맞춰주었고, 백설이 악몽을 꾸고 무서워하는 밤에는 그녀를 품에 꼭 안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백설도 그림하일드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혈연관계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새롭게 탄생한 가족은 누가 봐도 완벽했다. 그들은 동화 같은 시절을 보냈다. 왕이 느닷없이 목숨을 잃기 전까지는. 그 완벽한 궁전의 기둥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왕이 죽자 그림하일드는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와 별개로 그 가족의 축이, 생산처, 공급처가 느닷없이 파괴되었다. 그림하일드는 여왕으로서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거울장인의 위축된 딸로 살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백설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새어머니를 느끼지 못했다. 백설은 슬펐다. 인형도, 동물 친구들과도 더 이상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녀는 이미 훌쩍 자라 있었다. 백설의 눈에 새어머니의 짙은 슬픔이 보였다. 그 슬픔에 가려, 그녀의 시야에 본인이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르거나 보챌 수는 없었다. 백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


그림하일드는 왕이 죽고 난 후, 전에 아버지와 살던 집에서 가져온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녀는 거울에게 말을 걸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내가 가장 예쁜 게 맞니? 여전히? 완벽해? 변해버린 새어머니를 백설은 먼 발치에서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백설은 점점 피어났다. 그녀의 미모는 한때 그림하일드의 전성기처럼 눈부시게 빛났고, 그에 반비례하여 그림하일드의 그것은 조금씩 지고 시들어갔다. 그 사실은 그녀들의 마음에 다른 유형의 씨앗을 심었다. 그림하일드는 낮에는 거울 앞에 머물고, 밤에는 그녀의 침실로 남자들을 끌어들였다. 화려한 장신구를 모아 치장하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요법을 찾아다니며 시도했다. 그녀는 백설을 더 이상 전과 같은 다정한 시선으로 봐주지 않았다. 백설을 보는 것이 불편해졌다. 대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과거 눈부시게 빛나던 그녀를 계속해서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원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금씩 절망하고 있었다.


그림하일드는 그녀를 가장 추앙해 주는, 그녀의 비위를 가장 잘 맞춰주는 젊은 남자와 재혼했다. 그렇게 세 번째 가족이 생겼다. 그곳에서 백설의 입장은 모호해졌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부녀끼리 보냈던 어린 시절보다,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당시의 그림하일드와 함께 보낸 시절이 훨씬 더 행복했다고, 백설은 생각했다. 새어머니가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던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그건 이미 저 먼 과거의 일이었다.


백설은 문득 그림하일드의 새 남편, 그러니까 백설에게는 새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그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집요하게 더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설은 그림하일드가 가장 찬란하던 시절의 모습을, 이제 막 재현하며, 혹은 능가하며, 절정을 향해 피어나는 중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새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백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굳이 과시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창 때의 그것은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백설을 향한 남편의 시선을 인식하게 된 그림하일드는 마침내 백설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나와 이곳에 함께 살 이유가 없지 않니. 더 이상 널 보고 싶지 않아.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해.


백설은 새어머니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백설의 현재 처지로 공주랍시고 궁전에서 산다는 것이 그녀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따분하기도 했고. 간단히 짐을 챙겨 나왔다. 인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특별히 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무작정 길을 떠났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겁에 질리지도 않았다. 그녀가 새롭게 잃어버린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을 몰랐던 그녀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가볍게 나왔지만 짐도 무거웠다. 하염없이 숲 속을 걷다 보니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잠시 어딘가 앉아 쉬고 있던 그녀에게 키 작은 사내들이 다가왔다. 저기, 어디 갈 곳이 없으신가요. 백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 고팠다. 그들은 괜찮다면 그들을 따라와도 된다고 했다. 먹을 것도 주겠다고 했다. 백설은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 제안을 따랐다. 따라가 보니 커다란 오두막에 일곱 명의 남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가 작고 흉측하게 생겼다. 그러나 무섭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백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백설은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따로 갈 곳도 없고 첫 여정에 이미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배를 채우고 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이상한 촉감을 느끼며 깨어났다. 그녀의 뺨, 머리카락, 손가락을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이, 슬며시 어루만지고 있었다. 백설은 그냥 계속 잠든 척하기로 했다. 여러 밤들이 종종 그랬다. 백설은 밤에 찾아오는 그 불쾌함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견뎠다.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낮에 그들은 일을 해서 그녀에게 먹을 것을 구해다 주었고, 그녀를 돌봐주었으며, 그녀가 듣기 좋은 말을 해주었다. 백설은 때때로 그들의 얼굴을 보며 어떤 미세한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오두막을 떠나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곱 명의 남자들이 모두 일을 하러 집을 비운 어느 날, 혼자 있던 백설은 밖으로 나갔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백설의 흰 피부에, 검은 눈동자에 부딪혀 반사됐다. 그 빛은 그대로 그의 눈에 닿았다. 그는 자신을 이웃나라 왕자라고 소개했다. 백설에게 이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지 물었다. 백설은 자신의 출신과 구체적인 사정을 처음 본 이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 그냥 저기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백설은 여전히 눈부시게 예뻤지만, 더 이상 공주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왕자는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당연하게도 백설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왕자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이웃나라의 이웃나라의 공주였다. 그들은 완벽한 한쌍이었다. 그 둘의 결혼은 그들 각자가 속한 왕국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었고, 이웃나라의 이웃나라의 공주도 백설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누가 봐도 공주처럼, 귀한 사람처럼 보였다. 백설은 더 이상 공주도 아니었고, 귀해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누구나 홀릴 만큼 더없이 아름답기만 할 뿐이었다.


백설에게 반한 왕자는 계속해서 오두막을 찾아왔다. 그는 백설이 일곱 명의 남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자도 일곱 명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백설을 탐했다. 하지만 백설의 과거를 묻거나, 백설과의 미래를 묻지 않았다. 그저 종종 찾아와 백설을, 그녀의 아름다움을 취할 뿐이었다. 백설은 그런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금 행복해졌다. 왕자가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일곱 명의 남자들이 일을 떠나 집을 비운 어떤 날들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백설에게 왕자가 말했다. 널 사랑해. 너는 세상 모든 여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 너는 정말 특별해. 나는 결코 너를 잊지 못할 거야. 사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어. 이제 너를 보러 오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 줘. 영원한 내 사랑.


백설은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애써 모르는 척하는,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 짓던, 그 일곱 명의 남자들과 함께 하는 오두막에서의 생존으로. 더 이상 그녀를 찾아오지 않는, 숲속 오두막에 사는 백설 대신 본인의 안전한 미래를 선택한 왕자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림하일드가 오두막을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생기를 잃고 부쩍 늙어있었다. 백설이 기억하는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해 보였던 새어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웠다. 그 사실을 그녀도 아는 듯했다.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니라 네 모습이 떠올라. 백설아. 그게 너무 괴롭구나. 백설의 눈에서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그림하일드는 백설에게 투명하고 예쁜 용기에 담긴 사과잼을 건넸다. 정원에 너를 꼭 닮은 예쁜 사과가 있길래, 너를 생각하며 만들었단다. 먹고 싶을 때 먹으렴.


그림하일드가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왕의 부고 소식이 퍼졌다. 백설에게 집요한 시선을 던지던, 그림하일드가 새로 맞이한 젊은 남편이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했다. 그가 그림하일드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해 주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백설은 생각했다.


어느 맑은 날 오후, 일곱 명의 남자들이 일을 나간 사이에 백설은 편지를 썼다. 부탁을 꼭 들어주세요. 그러고 나서 새어머니가 주고 간 사과잼 뚜껑을 열었다. 빵에 듬뿍 발라 크게 베어 물었다. 맛이 좋았다. 새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그녀가 어린 시절, 그림하일드는 직접 백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곤 했다. 백설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던 새어머니의 다정하고 자애롭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백설은 스푼으로 사과잼을 크게 떠 한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신선한 사과의 과육과 향이 입안에 가득 차 퍼져나갔다.


일곱 명의 남자들이 집에 돌아왔지만, 여느 날처럼 백설이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백설을 깨워보았다. 그녀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꿈을 꾸며 자는 듯 죽어있었다.


남자들은 슬퍼했다. 그들은 백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비록 백설이 한 번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한 적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백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숲 속 정오의 햇빛이 여러 갈래로 부서지는 곳에 전시가 생겼다.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관 속에 백설이 있었다. 그 관은 서있었다. 그리고 그 관을 둘러싼 구조물의 천장과 바닥, 벽, 사방은 거울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장소에 들어서면, 굳이 크리스탈 관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그 어느 곳에 두더라도 백설의 전라(全裸 )가 비쳤다. 그 모습은 마치 조각된 인형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기괴했다. 백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맨 몸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달라는 요청을 남겼다.


어느 숲 속에 이상한 것이 있다는 소문이 나라 곳곳에 퍼졌다. 사람들은 백설을 보러 찾아왔다. 어떤 이들은 관 속에 서있는 완벽한 자태의 그녀를 보고 감탄했다. 또 어떤 이들은 살아있는 것 같지도 죽어있는 것 같지도 않은 그녀의 보존된 시신을 보고 기괴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이들은 한 때 왕국의 공주였던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백설을 영원히 사랑한다고 했던, 그러나 더 이상 그녀를 찾아오지 않던 왕자도 그녀를 보러 왔다. 그는 백설을 한동안 물끄러미 보다가 돌아갔다. 그렇게 백설은 무수한 사람들에게 전시되었고, 투영되었고, 내내 비쳤다.


시간이 흐르자 발길은 끊겼다. 더 이상 아무도 그곳을 찾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손상되지 않도록 특수 보존 처리된 완벽한 아름다움이, 그러나 생명은 소멸해 버린 그녀의 전시(展示)가, 사람들은 불편해지고 말았다. 더 이상 누구의 시선도 백설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를 둘러싼 거울 속에 비친 거울 속에 비친 거울 속에 홀로 보존된 그녀는, 거울의 방 한가운데 놓인 투명한 관 속에 고정된 채, 무한히 비추어지고 있었다.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airest of them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