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Beauty] 피부 거울

by 영업의신조이

피부 거울

_ 모두를 비추고, 나만 남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인정이다.

천인정.


그 이름은 병원 기록지와 행정 서류 위에서는 또렷했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침묵 속으로 밀려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늘 먼저 붕대에 닿았고, 그다음이 상처였으며, 이름은 그 뒤에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인정은 이미 설명이 끝난 사람처럼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이름은 불리는 것이 아니라 견뎌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주 일찍 몸으로 배웠다.


인정이 자신의 몸을 처음 이상하게 느낀 것은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다. 운동장에서 친구가 넘어져 무릎을 다친 날이었다. 붉은 피가 무릎 위로 번지는 순간, 인정의 다리가 이유 없이 뜨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무릎에는 같은 자국이 떠올랐고, 통증은 한참 뒤에야 찾아왔다. 놀람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고요였다.

방 안은 조용했고, 그는 혼자였다. 외로움은 이미 익숙한 감각이었기에, 이 기이한 현상은 질문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남들의 상처는 그의 몸을 경유해 지나가기 시작했다. 피로 드러나는 상처뿐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까지도 그를 통과했다.

울지 않는 얼굴 뒤의 슬픔, 참고 웃는 사람들의 밤이 그의 잠을 깨웠다. 이유 없는 불안이 가슴을 눌렀고, 숨은 점점 얇아졌다. 그의 몸은 하루하루 빠져나가지 못한 감각을 쌓아 올렸다.


인정의 두 부모는 모두 일찍 그를 떠났다.

아버지는 기억보다 먼저 사라졌고, 어머니는 여섯 살이 되기 전 폐병으로 죽었다. 인정에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기억은 단 하나, 마지막 숨이다. 방 안의 공기가 얇아지던 밤, 숨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던 리듬. 그 감각은 오래도록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이후 할머니와 살았지만, 집은 늘 비어 있었고, 아이는 그 빈 공간 속에서 자랐다.


외로움은 인정의 가장 오래된 감정이다.

그 감정의 끝에서 그는 하나의 이유를 건져 올렸다. 친구들의 웃음이었다. 운동장에서 들리던 웃음소리, 다친 뒤 다시 일어나 웃던 얼굴들. 그 밝음이 그를 붙잡았다.

그래서 그는 더 보려고 했고, 더 느끼려고 했다. 누군가 다치면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고, 누군가 상처받으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그들이 다시 웃는 순간, 인정은 잠시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감각의 범위는 넓어졌다.

친구들의 부모, 가정의 균열, 말해지지 않은 피로까지 그의 몸에 쌓여갔다. 허리 통증이 겹쳤고, 가슴의 답답함이 내려앉았다. 그는 받아냈고, 사람들의 고통은 서서히 가벼워졌다.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인정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아픔과 슬픔인정의 몸에 그대로 내려놓고 돌아갔다.


그 결과, 인정의 몸은 형태를 잃었다. 상처 위에 상처가 겹쳤고, 붕대는 일상이 되었다. 아물지 못한 피부에서는 진물과 고름이 섞여 나왔고, 악취는 그의 하루가 되었다. 마음의 무게 또한 말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쌓여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더 이상 ‘도움받기 좋은 모습’이 아니게 되었을 때였다. 연락은 줄었고, 그를 반겼던 문은 닫혔다.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말들은 모두 이해 가능한 이유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괜찮다.

아이들이 예민하다.

요즘은 조심해야 한다.


거리에서 오랫동안 도와주던 친구의 어머니를 만난 날, 인정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 그러나 그의 손은 밀쳐졌다.


“요즘 세상에 이런 건 조심해야지.”

말 뒤로 물수건이 움직였고,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몇 달 전, 골목 끝에서 홍역에 걸린 세 살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불덩이 같았고 숨은 거칠었다. 인정은 말없이 아이 곁에 앉았다. 열과 발진이 그대로 그의 피부로 옮겨왔다. 새벽이 되자 아이의 숨은 고르게 돌아왔다. 다시 찾아갔을 때, 아이는 웃고 있었다. 인정이 손을 내밀자, 아이 엄마의 손이 먼저 그를 쳐냈다.


“지금은 괜찮아요.”

아이의 몸은 등 뒤로 숨겨졌다.


그날 이후, 길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인정을 피해 걸었고, 대화는 끊겼다. 그는 비춰준 상처들이 치유된 뒤, 남은 것이 자신의 상처 난 몸뿐이라는 사실을 견뎌내야만 했다.


어느 저녁, 인정은 목적 없이 걷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서 쓰러졌다. 아스팔트의 거친 감촉이 피부를 긁었고, 피가 번졌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세요?”


가로등 아래, 한 여자가 뛰어왔다. 붕대를 보고도 물서지 않는 시시선.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녀의 이름은 여하린이었다.


병원 환자복 위로 숨이 얇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폐암 말기 환자였다. 공기의 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하린은 말했다.

어릴 적 병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새벽 공기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숨이 막힐 때마다 그 냄새를 떠올린다고.

하린은 인정에게 묻지 않았다. 붕대도, 이유도. 대신 그의 숨을 살폈다.


“오늘은 조금 힘들어 보여요.”


그 말에 인정은 처음으로 비추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졌다.


둘은 같은 공기를 나눴다. 말은 적었고, 침묵은 편안했다. 인정은 하린이 웃을 때마다, 그 웃음이 오래 남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하린은 인정의 손을 피하지 않았고, 인정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곁에 ‘남아도 되는 몸’이 되었다.


새벽,

하린의 숨이 무너져 내렸다.


모니터의 소리가 흐트러졌고, 공기는 더 얇아졌다. 인정은 하린의 손을 붙잡았다. 눈이 마주쳤고, 아주 짧은 순간, 인정의 몸이 멈췄다.

아직 하린의 곁에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그 생각은 숨보다 짧았다.


그는 병실을 뛰쳐나갔다.

복도를 달렸다.

숨은 타들어 갔고,

땀은 등을 적셨다.

간호 스테이션에서 종이를 집었다.

손이 떨렸다.


천인정은 여하린에게 폐를 기증한다. 그리고 내 모든 장기를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기증한다.”


종이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남겨졌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었다. 다시 들이마시지 않았다. 폐가 저항했고, 몸은 떨렸다. 그는 시간을 벌고 있었다. 하린의 내일이 가능하도록. 이식 수술실 안으로 그녀가 살아 들어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인정은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1초,

1분,

그녀를 위한 시간을 벌고 있었다.

인정의 붕대는 피로 젖었고, 숨은 점점 끊어졌다.



며칠 뒤, 병원 로비의 TV 화면 하단에 자막이 스쳤다.


기적적인 이식 성공.

이름은 없었다.

인정의 폐는 하린의 가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감각은 아름다운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한 아이의 선택이었다.


모두를 비추고,

끝내 자신만 남지 않은,

피부로 된 거울의 이야기였다.



피부 거울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