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야상곡(夜想哭)
나는 야상(夜想)의 세계에 산다. 그 세계는 복잡하고 무겁고 피로를 주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술의 힘을 빌리거나, 내 주의를 붙들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의 영상에 집중해 보기도 한다. 내가 타고난 생체 리듬은 낮의 태양을 따르지 못하고 밤의 달을 따른다. 내가 선이 가늘고 몸이 찬 소음인 체질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사회의 기준인 태양의 질서에 맞추어야 하고 그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에 나는 늘 피곤하다. 그래서 통학이라든지, 통근이라든지 그런 정해진 의무에 매여있지 않은 방학이라든지 휴일이라든지 무소속의 상태일 때 나는 해가 뜰 때 잠을 자고 달이 뜰 때 깨어나 활성화된다.
주말인 오늘도 해가 뜰 무렵 잠이 들어 달이 뜰 무렵 깨어났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야상(夜想)에 빨려 들어간다. 야상곡(夜想曲)을 틀어놓고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쓰다 보면 그게 야상곡(夜想哭)으로 흘러갈 때가 종종 있다. 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반년 전부터 치료를 시작하고 약을 먹게 된 이후부터 그렇게 됐다. 밤에 성냥을 켜다가 종종 길을 잃어 곡(哭)의 경로로 빠질 때가 있다.
애도할 것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많은데, 그걸 애써 모른 척하고, 뒤로 미뤄놓고. 당장 하루하루 내 눈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치열하게 처리하느라 그런 것 같다. 요즘 내 일상에는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다. 업무 스트레스도 없고, 사람 스트레스도 없다. 내 상사, 동료, 직장 환경, 취미활동, 많지는 않지만 내가 소통하는 사람들. 그 무엇도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지금은 나를 잘 대해주고, 편하게 해 주고, 보호해 주려는 사람들만 있다. 전에 종종 그랬던 것처럼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억지로 꾸며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질 때도 요즘은 자주 있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누를 일도 없다.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정말로.
그래서인지 살도 좀 올랐다. 엊그제 반년만에 식사를 함께한 믿구비언 검사님은, 전에 우리가 같이 있던 부서에서는 내가 너무 말랐었는데 지금은 편한가 보다고, 살이 쪘다며 내게 좀 걸어 다니라고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내가 들은 그 모욕적인 말을 우리 아기 실무관님께 전달했더니 그 검사님께서 본인이 살쪘다는 말을 잘못 들은 것 아니냐며, 내가 자기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말랐다고 했다. 나는 내게 그런 말을 한 믿구비언 검사님께 언제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할지 고민했다. 나보고 양치기 소녀 같다고도 했다. 검사님이 가장 괴로워 보였던 너무 하얗던 얼굴을 우연히 목격한 날이 있었다. 나는 그날을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검사님께 좋은 일이 생긴 걸 알게 됐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수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저마다의 울타리와 그 안의 삶이 있는 게 참 예쁘고 따뜻하고 좋아 보인다. 그 안에 때때로 슬픔과 고통과 역경이 생길지라도. 어쨌든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극복하고 단단해지고 뭔가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보인다. 그 언저리를 지나가며 힐긋 보는 내 시선으로는 그렇다. 내게도 삶은 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둘러쌀만한 울타리랄 것이 딱히 없다. 그래서 나는 못 가지고, 남들이 가진 그게 부러운가 보다.
다른 사람들이 못 가지고 내가 가진 것도 많다. 타인이 나를 부러워하는 것도 많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타고난 것만으로 누려온 것도 많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고 남는 게 있는가 스스로 물으면 답은 공허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지도 못하는 평범한 것들이 부럽다. 뭔가를 자꾸만 애도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