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의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존재를 느낀다. 요 얼마간은 무감(無感)의 상태였다. 일상에 별 이벤트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도 없고 기쁘게 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 그래서 기록할 것도 없다. 약을 먹으면 일주일, 먹지 않으면 칠 일 간다던 감기는 약을 안 먹기로 선택하자 열흘간 지속되더니 이제 나은 듯하다. 확실히 몸이 아픈 건 불편하다. 마음도 그렇지만.
무감의 상태는 평온하다. 하지만 그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은 울고 웃고 화내야 맞다고 한다. 감정의 발화는 사실 피곤한 일이다. 나의 것도 상대의 것을 접하는 일도.
이따금씩 표정 없음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영혼이 없다는 지적도. 없는 것에 대해 지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보편적으로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결핍의 상태인 것이고 그건 가련하게 여길 일이지 타박할 일은 아닌 듯하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왜 꼬르륵 소리를 내냐.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왜 못 뛰어다니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감(無感)의 상태는 일종의 갑옷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험난한 삶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나의 생존 본능이 터득한 방법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 주장을 듣고 곧바로 반박했다. 하루 종일 갑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무사들도 집에 가면 갑옷을 벗는다. 갑옷 무게를 줄일 필요도 있고, 갑옷 입는 시간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잔소리를 하지 말랬더니 걱정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타인을 왜 걱정할까. 남이 무겁고 불편한 갑옷을 껴입고 살든지 말든지. 걱정을 해준다고 해서 그 갑옷의 무게를 덜어줄 수도, 그 갑옷을 벗겨줄 수도 없을 텐데. 그리고 그런 본인은 날개옷을 입고 가볍게 훨훨 날아다니고 있는지 나로선 알 수도 없다.
요즘은 한 겨울이기 때문에 바깥에는 눈보라가 치고 칼바람이 불어서, 갑옷을 벗자마자 살이 에고 트고 꽁꽁 얼어버릴 것이다. 그건 무척 고통스럽겠지. 갑옷이 꼭 필요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