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적해(The optimal solution)

그리고 보편의 최선해(The best feasible solution)

by Ubermensch






나의 문제를 알았다. 나는 최적해(The optimal Solution, 最適解)를 추구하고,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보편은, 그리고 세상은 최선해(The best feasible solution, 最解)에 만족한다. 그에 타협한다. 왜냐면 최적에 이르기에는 많은 에너지와 희생과 불협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보통은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나은, 가장 편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럭저럭 만족시킬 수 있는 공리주의적인 해를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기질을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그랬다. 너는 그러다 툭 부러지겠다고. 독불장군이라고.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냐고. 좀 휘어질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랬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보는 밤하늘에는 분명히 반짝이는 답이, 별이 보이는데, 왜 굳이 특색 없고 획일적인 가로등의 인공 불빛에 의존하면서, 단지 어둠에 걸려 넘어지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럴 거면 나는 왜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해 알아야 했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알아야 했는지 모르겠다. 내 모든 앎을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는 삶, 추구하는 바가 있음에도 실현할 수 없는 삶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매일 무엇과 무엇의 괴리와 무엇과 무엇의 모순을 직면하고 체감하며 좌절하는 삶은 비참 그 자체다. 바보나 강아지나 토끼나 고양이로 사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최적해를 아는 사람이 최선해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다. 모르는 이들은 상관없다. 모르는 것은 죄가 될 수 없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내 관점에서 죄가 된다. 나는 그 지점에서 혐오를 느낀다. 고립감을 느낀다. 나 혼자만 최적해를 추구하는 것 같아서. 나만 별나고 이상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가로등 불빛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은 그래서 밤길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니는데, 밤하늘에 떠있는 별만 쳐다보느라 나는 자꾸 길을 잃고 넘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