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에게, 혹은 YZABC
X. 당신은 X일 수도,
Y, Z, A, B, C. 뭐든 상관없어. 이니셜이 중요한 건 아냐. 내가 한 시절, 혹은 지금도 사랑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거지.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잖아. 마음껏 안심하거나 행복해하지도 못하고. 너는 그런 나를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그저 내가 크게 웃는 얼굴을 좋아해서 넘어가주곤 했고. 한번 더 웃게 해 주려고 애쓰고. 그런 너 때문에 나는 몇 번 더 웃었어. 사실은 전혀 웃기지 않았을 때도 말이야.
내 삶의 어느 시절 네가 만들어준 세상 속에 들어가 너와 함께 살았던 날들, 그 안에서 나는 너로 인해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표정을 짓지 않았던, 함께한 그 나날이 나에겐 사랑이었을 거야. 폐쇄적이고 미로 같은 나만의 세상 속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잖아 나는. 그런 나를 너의 무해한 세상으로 데려가줘서 고마워.
나는 너를 생각해. 여전히 많이 생각하고 있어. 그곳에 함께 있던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또렷하게 재생돼. 내게로 향할지 망설이던 묵직한 발걸음, 무방비할 만큼 커다란 눈동자의 흔들림, 내게 닿은 뜨겁고 투박한 손, 내 앞에서 무력하게 고통받던 모습. 아름다웠던 너의 맑음, 열정, 내가 봤던, 내가 없는 곳에서 흘렸을 너의 눈물.
상영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불쑥불쑥 재생되는 너를 나는 시청해. 감각해.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듯이 말이야. 너무 찰나라 아쉬워서 자꾸만 성냥을 꺼내서 켜게 돼. 조금 더 보고 싶어서. 제시간에 못 꺼서 가끔 손이 델 때도 있어. 그게 내가 너를 사랑한 증거인가 봐.
너는 한겨울 찰나의 불꽃 속에 살고 있어. 그렇지만 너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 동시에 나도 마찬가지야. 이건 저주가 아니야. 아마도 사랑이겠지.
보고 싶으니까 성냥 하나만 켜볼게.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