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최악의 사람

귀인 같은 소리

by Ubermensch





내 인생에 느닷없이 등장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난 이후 증발해 버린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사기꾼이라 불렀다. 내가 인생의 바닥을 치던 시절 커다란 개 같은 형상을 하고 나타나 당시 비바람에 젖어 엄마 잃고 떠도는 다 죽어가는 고양이새끼 같던 나를 보호하고 돌보고 먹이고 챙기고 의지시킨 후 최악의 방식으로 도망친 우주 최악의 사기꾼이다. 그 사람은 한때 스스로를 나의 귀인이라 지칭하며 뿌듯해했다. 내 세상의 구원자로서 내가 순수하게 표현했던 무한한 감사와 신뢰를 누렸다. 본인만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우주 최악의 사기꾼은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것도 모자라 떨어지는 나에게 낫까지 날렸다. 그 충격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구원자이자 귀인이던 시절 또한 분명히 실재했었기에 나는 양가감정에 빠져 어느 날은 증오를 했다가 어느 날은 그 보호막을 그리워하기도 해 가며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전에 맞았던 그 낫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나를 크게 찔렀다. 그러지 않아도 그때 다친 상처에서 피가 완전히 멎지 않은 상태다.


그 사기꾼이 나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후 스스로 놀라서, 실제로 내게 한 행위에 비해 몹시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축소된 사과를 했을 당시 나는 그 사과를 바로 거부했다. 하지만 그가 내게 주었던 뜨겁고 안전했던 기억, 실제로 내 삶의 귀인이 되어주었던 기억의 비중이 더 컸기 때문에 결국 이해하고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멀리 간 그 사람의 안정된 미래와 건강과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사람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순간에는 평시의 판단력과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결과를 내게 전가한 채로 도망쳤다.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사람이 아주 커다랗고 단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우주 최악의 사기꾼이었을 뿐이다. 스스로 우주 최악이라고 자조한 적도 있다. 나는 너무 크게 실망해서 인류애를 상실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자주 경련하는 명치에 다시금 꽂힌 이 부메랑 낫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우주 최악의 사기꾼은 본인이 내게 날린 낫의 결과에 대해 남 말하듯 했다. 언제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내 삶은 참 재밌다. 조금이라도 편안할 틈이 없다. 그 우주 최악의 사기꾼께서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발 뻗고 편안하게 주무셨으면 좋겠다. 전처럼 코피도 안 흘리고 살도 안 빠졌으면 좋겠다. 딱 내 고통의 크기만큼 많이 많이 행복하시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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