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의 마음
매주 목요일은 양쪽 검사실 식구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하는 날이다. 오늘은 옆방 부장님께서 선약이 있으셔서 우리 부장님, 앞자리 계장님, 실무관님 나 이렇게 넷이서 먹게 됐다. 앞자리 계장님은 직속상관 부장님보다 늘 우리 사무실에 상주하시는 우리 부장님 응대에 익숙하시므로, 사실상 우리 검사실의 선임 계장님이나 다름없다. 우리 방 사건도 다 강제로 파악하고 계시고.
미슐랭 맛집에 선정된 태국음식점에 갔다. 뿌빳뽕커리와 코코넛 치킨을 공통 메뉴로 고르고, 실무관님과 계장님은 평범한 소갈비 쌀국수를 주문했고, 부장님과 나는 선뜻 고르지 못했다. 요일 스페셜 메뉴인 소갈비 카오쏘이 커리국수와 똠양꿍 쌀국수가 다 궁금했다. 나는 똠양꿍 쌀국수를 선택했다. 이후 부장님은 커리국수를 선택하셨다. 서로 별 말은 없었다.
먼저 나온 공통 음식을 우리는 맛있게 나누어 먹고, 이후 개인 음식이 나왔다. 부장님은 주문하신 커리 국수 그릇에 드시던 젓가락을 조금 넣으려다 빼고, 다시 조금 넣으려다 빼고, 그러다가 끝내 젓가락을 음식에 대지 않고 내려놓으신 후 주변을 두리번거리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내가 말했다. 부장님, 제 똠얌꿍 국수랑 바꿔먹고 싶으셔서 그러신 거죠. 부장님은 말씀하셨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나는 종업원에게 그릇 두 개를 달라고 요청한 후 말없이 내 똠양꿍 국수에 있는 새우와 버섯과 국물과 면을 예쁘게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부장님은 부장님이 시킨 소갈비 카오쏘이 커리국수에 있는 고기 덩어리를 가위와 집게로 잘게 잘게 정성 들여 분리하셨다. 그리고 그릇에 고기와 면을 듬뿍듬뿍 담아 내게 건네주셨다. 그렇게 사전 의사 교환이라든지, 명시적인 소통이 없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국수를 덜어서 나란히 두고 나누어 먹었다. 부장님은 흡족한 표정으로 드셨다. 나도 그랬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계장님과 실무관님은 부장검사와 뽀시래기 계장 사이에서 허물없이 밥을 나눠먹는 상황을 이상해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식사에 집중하셨다. 나는 문득 사람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모 삼촌 동생하고 밥 먹는 느낌이 들어요. 하고 말했다. 계장님은 뭐 이모? 큰언니도 아니고? 이모? 이모? 라며 언짢아하셨다. 계장님은 81년생인데 MZ라고 주장하신다. 나는 다급하게 막내 이모...라고 수습해 보려 애썼지만 별로 수습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부장님은 내가 야근할 때마다 우비를 입고 짬뽕을 시켜 먹는 걸 보고 식당에서 1회용 앞치마를 챙겨 오셔서는, 짬뽕 먹을 때 쓰라고 무심하게 주셨다. 또 언젠가 저녁 부장님께서는, 계장님과 실무관님이 퇴근을 하시자마자 내게 찾아오셨다. 아까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가진 귤이 하나밖에 없어서, 하시며 내 손에 귤 하나를 놓아주셨다. 그 귤은 참 예쁘고 맛있었다.
카페에서 계장님이 실수로 내 옷에 커피를 조금 흘리셨다. 아까 이모라고 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옆에 앉아계시던 부장님은 곧바로 왜인지 주머니에 있던 휴지를 내게 내밀어주셨다. 오전에는 부장님께서 겨울의 기쁨(Winterfreude)이라는 차야, 한번 맛봐봐. 하시며 정성스럽게 우린 주전자를 직접 들고 오셔서 따라주셨다. 겨울의 기쁨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시기에, 나는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맛이에요. 하고 답했다. 부장님이 매일 내게 수시로 전해주시는 온기가, 겨울의 기쁨(Winterfreud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