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셀을 왜 밟았을까
요즘 어떤 커다란 위기에 처해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다. 내 삶 자체가 위기와 재난의 연속이긴 하지만 이건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종류의 것이고 마무리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소모될 것이어서 내 고통도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늘 그렇지 뭐, 하고 체념한 상태다. 나는 모든 일에 드라마퀸처럼 굴지 않는다.
간밤엔 세상의 냉동고 속에 보관된 아이스크림을 두 통이나 먹었다. 고등어 초절임과 닭꼬치와 술도 약도 먹었다. 내 몸은 그러려니 하는 듯하다. 고기능에 익숙한 신체이기 때문이다. 매일 하루 3시간 이상의 운전과, 70-80분 고강도 발레와, 잦은 야근과, 며칠 전에는 연달아 4시간 동안 피의자 조사를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자기 전엔 술도 먹고 기능을 유지할 약도 함께 먹는다. 약의 일정 목적은 무리한 고기능을 내려놓기 위함인데 여전히 내 뇌는 고기능을 원한다. 나는 뭔가를 계속 잘, 그리고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특이한 꿈을 꿨다. 친한 친구를 조수석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의 길의 경사가 점점 말도 안 되게 가팔라지더니 급기야 길의 모양이 원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길이 수평의 원이 아니라 수직을 향한, 높은 고도를 향한 원 모양인 것이다. 대관람차의 트랙 버전이랄까. 세상은 중력이 작용하고 있으므로 거기서 계속 직진을 했다가는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곧 뒤집어져서 아래로 추락할 것이었다. 내 자동차는 폭발적인 출력을 가진 스포츠카가 아니다. 꿈에서도 내가 운전하는 차는 평소 몰고 다니는 내 15년식 낡은 승용차였다. 현실에서도 4개의 바퀴 모두 저기압 상태 경고등이 떠있고, 하향등이 소등되어 교체하라는 경고등이 떠 있는 걸 무시하고 다니는 상태다. 꿈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나는 가파른 경사가 90도 100도 130도를 넘어가는 순간까지 액셀을 밟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가장 최고의 고도, 정상의 지점까지 이른 순간 나와 친구를 태운 내 자동차는 중력에 따라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앞유리가 산산조각 났고 친구가 튕겨나갔다. 그 장면을 나는 왜인지 밖에서 볼 수 있었다. 떨어져 나간 친구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꿈속에서 나는 친구가 살아남지 못했음을 알았다. 내가 멈추지 않고 브레이크가 아닌 액셀을 밟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같은 높이에서 같은 차를 타고 추락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의 깨진 앞유리만 보였을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려고 보니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다. 피가 너무 콸콸 오랫동안 흘러서 20분 넘게 휴지를 교체하며 지혈을 해야 했다. 오늘은 어차피 병원에 갈 일이 있어 오후에 출근할 것으로 사전 결재를 올려두었다. 코피는 굉장히 오랜만에 흘려보았기 때문에 나는 피가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코를 쥐고 내가 어떤 큰 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만약 큰 병에 걸린 거라면 나는 그냥 치료를 포기하고 삶을 마무리해도 딱히 아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굳이 몸을 일으켜 밖에 나다니며 살아갈 기운도 즐거움도 크게 없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