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외면된, 방치된.
나는 장녀다. 우리 아빠는 장남이고, 우리 엄마는 차녀지만 친가에서는 내가 첫 친손주고 외가에서도 내가 첫 외손주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내 형제관계에 대해 누가 추측할 일이 있다면 보통은 나보고 외동이냐, 혹은 오빠가 있는 막내냐고 물어봤다. 내게 온실 속 화초 같다고 하기도 한다. 황무지의 잡초처럼 자란 내게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유일하게 믿구비언 검사님만 내게 안 친한 동생이 있는 맏이이지 않느냐고 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늘 책임을 강요하는 언어를 듣고 자랐다. 누가 나를 보호해 준다거나 나에 대한 책임의 언어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누구를 잘 챙겨야 한다. 누구에게 잘해야 한다. 누가 힘들다. 누가 불쌍하다. 네가 더 잘해야 한다. 뭘 더 많이 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죽어라 잘해도 열심히 해도, 성과를 내와도 그건 당연한 기본값이었다. 뭔가를 성취하는 것도, 내가 타고난 장점이 많아서 혹은 내가 이기적이라서 그에 따라오는 부수물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그 이면에 가려진 내 피나는 노력이 인정받은 적은 거의 없다.
나 스스로만 그 이면에 가려진 내 노고를 인정하고 보듬고 나를 달래줬다. 그리고 내가 멈추지 않도록 더 채찍질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늘 멀쩡한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단 한 번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쓰러지거나, 완전히 망가져버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그럭저럭 기능함은 늘 기본값으로 여겨졌다. 나조차도 내가 큰 문제가 없고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서른 중반이 넘고서야,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마침내 알게 됐다. 나는 평소에 내가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망가져있다고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하지만 내 뇌파 검사 결과를 토대로 판단한 전문의의 소견은 내 상태가 아주 오래전부터 만성적으로 고질적으로 망가져 있는 상태였고, 아주 위태로운 상태라고 했다. 나는 전혀 몰랐다.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야 마침내 나는 혼자 울 수 있게 됐다. 아무리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속에 뭐가 가득 차도 나는 혼자서는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스스로 빈 곳이 없도록 뭔가를 채워 넣었다. 뭔가를 채워 넣어 해내고 성취하면서 억지로 굴러가는 삶을 살았다. 왜냐면 그래야만 나에게서든 타인에게서든 인정받고 질책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야 좀 사이사이 빈 곳이 있더라도 내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냥 둬도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알게 됐다. 나는 좀 쉬어도 됐고 그냥 애처럼 엉엉 울어도 되는 거였다. 나는 내가 남들에게 불쌍해 보이거나 안쓰럽게 보이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는데, 좀 그런 취급을 당해도 됐던 것이었다. 굳이 늘 멀쩡하고 세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런 멀쩡해 보이는 모습을 고수했던 것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남의 편의를 봐주기 싫어졌다. 그냥 좀 이기적으로 살고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