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반짝이가 폴폴
스노우볼 부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스노우볼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나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꼭 소품샵에 빨려 들어가곤 하는데, 거기서 파는 스노우볼은 항상 엄청나게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고소한 정수리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에 정신이 팔려있는 내게 골라보라며 사주겠다고 했지만, 나보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고 같은 공노비 신세인데, 너무 비싼 걸 고르기는 미안해서 스노우볼을 골라본 적은 없다. 또 스노우볼이 어디에나 있지도 않고. 그렇지만 한 번쯤 갖고 싶긴 했었다. 투명한 유리구슬 속에 눈이나 반짝이가 와르르 떠다니는 모습이 정말 예쁘고 동화 속 세상 같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스노우볼 선물을 받게 됐다. 그것도 여러 개나. 그는 해외여행을 가면 도시별로 스노우볼을 사 오곤 했는데, 내가 예쁜 쓰레기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되자 선물로 준다고 한 것이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뾱뾱이로 정성스럽게 감싼 스노우볼 여러 개와 조립하면 꽃이 되는 레고와 핫팩, 귀여운 그립톡도 있었다.
그는 내게 보내줄 택배상자를 들고 가는 길에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흔들려서 그런 것이라고 했으나, 엄청나게 추운 밤인데도 그 흔들림 덕분인지 사진에 나온 발걸음이 굉장히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꼭 내가 택배를 받아보고 좋아할 생각에 들뜨고 신난 사람처럼. 받아볼 사람을 생각하고 챙겨주는 마음이 사진에서 고스란히 느껴져서 박스를 들고 걷는 사진만 봤는데도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사무실 책상 이곳저곳에 스노우볼을 전시해 두자 부장님이 내게 물어보셨다. 이 예쁜 건 어디서 난 거야? 음. 제 팬이 선물해 준 거예요. 여행 가서 그 도시에서 사온거래요. 다이소에서 파는 거 아니야? 나는 발끈했다. 여기 보세요. 메이드인 에스파냐라고 쓰여있잖아요. 알겠어.
내 사무실 자리는 온갖 예쁜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다. 전에 같이 일했던 디즈니 공주님 같은 검사님이 선물해 주신 시나모롤 케이스, 시나모롤 컵, 미국에 일 년이나 다녀오시면서도 나를 잊지 않으시고 사다 주신 화장품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검사님과 커플인 귀여운 고양이 달력, 카드 등등. 지난주에 내가 위경련을 겪고 이틀 병가를 쓰고 돌아오자마자, 부장님은 부장님이 드시는 영양제를 종류별로 몇 주 치나 내어 주셔서, 영양제도 한켠에 쌓여 있다.
올해는 안 그래도 불로 가득한 사주에 불이 더해져서, 나는 불타는 불바다를 달리는 흰 말의 위기라고 한다. 그 저주를 입증하듯 연초부터 불지옥에서 타들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문득문득 사람들의 마음들이 마치 스노우볼 속 눈처럼, 반짝이처럼 예쁘게 흩날려 온다. 그래서 나는 타죽지 않고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