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는 일

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

by Ubermensch










나는 경제범죄를 전담하는 부서에 근무하는 수사관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일부 범죄로 축소되었고, 주임 시절에는 대체로 수사부서보다는 비수사 행정부서에 근무하기 때문에 검사실에서 실제로 기록을 검토하고 사건관계인을 불러 조사하는 일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요전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부서에 오래 있었고, 중간중간 위증이라든지 공판수사 경험이 조금 있는 정도였다. 당시 담당했던 재판부가 성폭력, 아동폭력 전담이었기 때문에 나는 추후 절대 성이나 아동 범죄 전담 쪽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사회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연약한 피해자들이 잔뜩 상처 입은 모습을 접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추후 경제 범죄를 전담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당시 내 선언을 듣고 어떤 검사님은 내게 그게 본인 뜻대로 될 것 같냐, 형사부에 가면 아무 사건이나 다 맡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운 좋게도 경제범죄만을 전담하는 부서에 오게 됐다. 특별히 지원을 했던 것도 아니다. 성범죄자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은 애초에 겉보기에 약해보이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성향이기에, 젊은 여자를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 10년 전 수습 수사관 시절 그쪽 전담 검사실에 잠시 있어봐서 안다. 그들은 젊은 여자 검사님한테도 함부로 대한다. 오히려 체격이 좋고 엄해 보이는 남자 수사관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다.


사기꾼들은 난폭하지 않다. 말이 많을 뿐이다. 그들을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정말 상황이 그래서 그랬나 보다. 기망의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이 사람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직전까지 간다. 나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아 피해자의 심정을 떠올리고, 사전에 준비한 탄핵자료와 증거 등을 내밀며 추궁을 한다. 애초에 사기꾼들이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과 믿음을 이용할 줄 알고, 타인의 신뢰를 살 수 있는 설득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초급 수사관 시절 나는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사건에 비하면 사기사건은 시시한 범죄라고 생각했다. 그저 개인 간 채무불이행 관련 다툼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하지만 경제범죄를 접하면 접할수록 피해자들의 가정과, 경제와, 마음과, 삶이 파탄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사기꾼들은 단순히 돈을 훔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과 삶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 앗아가기도 한다. 결코 시시하게 여길 만한 범죄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폭행, 상해, 절도 같은 범죄는 단순하다. 순간의 감정, 혹은 우발적인 상황, 현실의 구체적인 고통 같은 인간적 요소들이 반영되기도 한다. 이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기,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의 경우는 한 인간의 순수한 이기심과 탐욕으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에 누군가 뭘 더 가져가면 누군가는 그만큼 잃고 만다. 애초에 동등한 교환이 될 수 없다. 경제범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한다.


내가 있는 부서에서는 억대 규모의 경제범죄도 꽤 있다. 사회적으로 충분히 명망 있는 의사, 회계사, 교수, 전직 고위 경찰출신도 피의자로 온다. 이미 충분히 많이 가진 사람들인데 그 충분함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욕심을 부리고, 남을 속이고, 배신을 해서 도리어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상황에 스스로를 내몬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되는지 나는 고민해 본다.


매일매일 사건 기록을 읽고, 여러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말과 마음을 묻고, 듣고, 쓰는 일이 내 업(業)인 것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