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망해가는 회사 속

by Ubermensch








보통 계장 직급을 달고 검사실에 처음 가면 선임 계장이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경우다. 수사경력이 많은 선배 계장을 잘 만나면, 맞은편에 앉아 조사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피의자신문조서 작성법이라든지 각종 기록검토보고서, 수사결과보고서 등 보고서 작성 요령 등을 전수받을 수 있다. 친절하고 좋은 선배라면 그렇다. 후배에게 일만 떠넘기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선배도 물론 있다. 그런 경우 부서 내 다른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거나,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알아서 살아남거나, 경험이 있는 동기나 후배에게 물어물어 성장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처음 검사실에 갔을 당시 공판수사 경력 약간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수사검사실 수사경력이 전무함에도 선임 계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도리어 후배가 수사 경력이 있어서 내 입장이 조금 난처했다. 하지만 그곳에 이틀 근무하자마자 나는 타 부서에 근무지원을 가게 되었고, 그곳은 보통 경력이 아주 오래된 부장검사님들로만 구성된, 그리고 수사관도 급수가 높은 어르신들로만 구성된 곳이어서 나만 30대 뽀시래기 초급 계장인 상황이었다. 당시 내가 이틀 근무한 곳의 검사님께서는, 내가 가게 될 부서의 사건은 어렵고 기록검토보고서를 작성할 일도 많기 때문에 수사경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를 단독 계장으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선임 계장이 분명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나는 부장검사님께 딸려있는 유일한 계장이었다. 처음 온 날 나는 캐비닛에 기록을 넣는 방향도 알지 못해서 거꾸로 넣었던 것을 낑낑거리며 다시 다 뺀 다음 새로 넣어야 했다. 앞자리 계장님은 내가 일부러 부장님께 초보 티를 내서 어려운 사건을 안 받으려고 계략을 꾸민 것이 아니냐고 나를 의심했다. 그건 아니었다.


처음 와서 한 달 동안 나는, 부장님 저는 교육을 좀 받고 오겠습니다. 하며 수사검사실에서 사용하는 시스템 사용법부터 각종 수사기법 등을 알려주는 대검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부장님은 기수가 검사장급으로 까마득하게 높으셔서, 실제로 수사를 하고 직접 사건을 검토해서 처분을 하시는 일이 굉장히 오랜만이셨다. 그전에는 형사 1부장 입장에서 평검사들이 수사해 온 사건기록을 보고 근엄하게 결재하시는 일에만 익숙하셨을 텐데, 느닷없이 삐약대는 뿅아리 계장과 단둘이 팀을 이루어 매일 사건 배당을 받아 수사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곳은 부장검사님들로만 구성된 부서이기 때문에 사건 배당 건수가 많지는 않지만 사건 난이도가 높고 까다로운 사건이 많아서, 계장들도 경력이 많은 고참들이 대부분이다. 나만 제외하고. 처음 온 날 내가 부장님의 캐비닛에 기록을 거꾸로 넣었을 때 그걸 보셨던 부장님은 어떤 심정이셨을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결국 나는 업무 스타일이 빡세기로 유명하셨던 부장님의 수족으로 나름대로 부장님의 인정을 받은 듯했다. 내가 이 부서의 유일한 지원인력임에도 나를 빼앗길 위기상황 때마다 부장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나를 지켜주셨고, 부장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는 한 계장이 바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셨다. 어제 옆방 부장님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셨다기에, 나는 우리 부장님께 부장님 우리도 구속할 거 있어요. 이 병원장은 아주 나쁜 놈입니다. 엄청 해 먹었어요. 그런데 제 조서 초안 언제 첨삭해 주실 거예요? 제가 파일 보내드렸잖아요. 빨리 검토부탁드립니다. 하며 보챘다. 부장님은 이따 밤에 야근하면서 볼게. 그냥 대충 조사하면 되잖아. 하셨다. 나는 모녀 사기꾼의 공동정범 입증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부분을 살리고 싶어서 그쪽 질문을 보강했으니 빨리 부장님이 봐주시면 좋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사실 우리 회사 보편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초임 검사들도 부장검사님께 피의자신문조서 초안 파일을 띡 보내놓고 검토해 달라 수정해 달라고 쉽사리 하지 못할 것이다. 드높으신 우리 부장님 기수쯤 되면 더더욱. 하지만 우리 부장님은 마치 학원 첨삭 지도 선생님처럼, 내가 기록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 20페이지 넘게 꾸려놓은 피의자 신문조서 초안의 질문들을 하나하나 살펴봐주시고, 일일이 색을 입혀 수정 부분을 표시해 주시고, 보다 법률적인 문장으로 고쳐주시고, 더 날카로운 질문으로 바꿔주셨다.


그리고 내게 수정본 파일을 보내주신 후 자리에 찾아와 설명도 해주셨다. 조사를 할 때는 긍정문으로 묻는 게 좋아. 피의자는 이런 의도로 이러한 것이 아닌가요, 하면서 부정문으로 물어봐서 피의자가 네. 해버리면 명확하게 얻을 게 없거든. 긍정문으로 물어야 피의자가 대답을 길게 해. 부장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이런 팁은 병아리 수사관인 내게 정말 빛과 소금 같은 가르침이다.


사실 이제 몇 달 후면 회사가 망하고 조직이 분열되고 대부분의 검사는 공소청에 남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본 바 있다. 나는 중수청에 가서 수사를 할 생각이므로 앞으로 검사님들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장님이건 다른 검사님이건 내게 수사에 관해 알려줄 의무는 전혀 없다. 하지만 나는 부장님께 어떻게 하면 수사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이거 다 했는데 더 어려운 거 주세요. 이거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며 계속 부장님의 노하우를 탐하고 있다. 부장님은 기꺼이 내게 지식을 물려주신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검사님들도 그러셨다. 어떤 검사님은 검사들이 보는 업무 매뉴얼을 내게 주셨고, 다른 검사님은 내가 또 다른 검사님과 했던 인지사건도 본인의 야근 시간 중 검토해주시고 조언해주셨다.

나만 의욕적으로 하고자 하면, 누구든 기꺼이 선생님이 되어주신다. 그로부터 내가 잘 배우고 성장해서 결과로 보여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감사한 그 분들에 대한 조금의 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믿구비언 검사님은 내게 알려주시는 과정이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나는 한 그루의 커다란 사과나무로 자라서 예쁘고 단단한 사과를 많이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