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눈물

에 약한 나

by Ubermensch







내가 그간 공들였던 사기사건 피의자 조사를 했다. 4시간이 넘어갔다. 요즘 다루는 규모 있는 사기 사건들은 그렇다. 그렇다고 딱히 힘들지는 않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부서가 꿀통이다, 그린캠프다, 천룡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주일에 3일이나 조사를 하고, 우리 부장님은 평일이건 주말이건 한밤까지 일을 하시고, 나도 그렇고, 이번 주 다음 주 이후로도 줄줄이 조사 일정이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청의 일반 형사부도 이 정도로 하지는 않는다. 기록만 보고 준비를 했을 때는 나는 피의자가 몹시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한 한 최대한의 처벌을 받았으면 하고 악착같이 준비를 했다.


어제 검찰청에 처음 불려 온 피의자는 내 앞에서 오열을 했다. 나는 휴지 박스를 통째로 건네고 물을 권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소시오패스다, 대문자 T다, 공감능력이 없다, 차갑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눈물에 약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감정을 무기로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거나, 면죄부를 삼으려 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로 억울하거나 상처나 슬픔이 와닿는 경우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느낀 것이 것이 절대적으로 사실관계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해 백 프로 확신은 없다.


차라리 피의자가 정말 반성을 한다며 울었다면 악어의 눈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상황을 잘못 만들어간 자신에 대한 자책과, 무지함에 대해 통탄했다. 본인도 회사에 전 재산을 투자해서 돈을 돌려받지 못해 파산하고, 민사소송이 걸리고, 나이 육십에 남은 생에 아무리 일을 해도 수십억을 벌어 피해자들에게 변제가 불가능함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피해자들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고 무엇을 말해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심정을 본인도 안다고 했다. 본인도 믿었던 회사에 투자금을 달라고 쫓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니던 회사를 믿고 본인과 가족들도 거액을 투자해서 회사를 고소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이상하다고 여겨질 때 진작 발을 빼지 못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었다. 본인도, 본인이 끌어들인 사람들의 투자금이 너무 많이 묶여 있으므로 피의자는 회사를 믿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극단에 이르자 젊은 딸까지 엮이게 만든 자신을 자책했다. 결국 딸에게도 외면을 당하고 가족들의 인생이 망가졌다. 남편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혼을 하자고 했단다. 나는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다. 피의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피해자의 고통만 보여서 화가 잔뜩 났었다.


피의자는 별 어려움이 없이 자랐다고 했다. 실제로 물정을 잘 몰라보였다. 그러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줬고 극심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녀를 위로하거나 두둔해 줄 순 없었지만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에서 배어 나오는 고통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삶은 가끔 이상한 방향으로 튄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방향으로, 혹은 내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가 맞다고 믿던 어떤 것이 사실은 전혀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던 경우가 있다. 그걸 인지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내 힘으로 수습할 수 없게 되면, 커다란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바다가 나를 집어삼켜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몸에 힘을 푼 채 그저 부유하게 된다. 피의자는 그런 상태로 보였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피의자가 형사처벌을 받는다 해도, 가진 게 전혀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피의자는 본인이나 가족들의 투자금액은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본인을 믿고 투자했던 피해자들의 돈은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차라리 본인이 죽어서 보험금이 나오면 그걸로라도 갚아주고 싶은데 자살을 하면 보험금이 안 나온다고 했단다. 어떻게든 돈을 갚고 싶어서, 파산신청을 할 때 본인을 믿고 투자한 피해자들의 채무는 일부러 제외했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나는 그녀가 가진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꼈다. 사건에 얽힌 모두의 고통이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안타깝다. 하지만 나 역시 남의 행복에 뭔가를 보태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나도 행복과 그리 가까운 사람은 아니므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