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를 읽고.

by Ubermensch





부장님이 이사를 앞두시고 집에 있는 책을 바리바리 싸 오셨다. 나는 부장님의 졸개로서, 부장님을 위해 책 포장용 에이포용지 박스를 구해다 드렸다. 인싸 실무관님도 친구들을 통해 많이 구해 오셨다. 나는 아싸라서 실무관님만큼 구하기는 어려웠다. 박스 배달을 마치고 부장님 사무실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 두 권을 부장님께 대출 요청했다.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와, 레슬리 스티븐슨 등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두 권이었다. 유성호 교수님께는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조금 있다. 재작년에 내가 담당했던 재판에서 유 교수님이 증인으로 채택이 되어서, 나는 그분을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서울대학교에 연락도 해보고, 등기도 보내보고, 조교와 통화도 하고, 굉장히 공을 들였지만 워낙 바쁘셔서 법정 출석은 힘들다고 거절을 당했고, 대신 서면으로 감정서를 보내주시겠다고 어렵게 허락을 해주셨다. 교수님과는 직접 연락하지도 못했다. 조교의 조교로부터 어렵게 의사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후자는 내가 대학 때 재밌게 들었던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었던가 하는 교양 수업의 참고 서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스물여섯 때, 검사실에서 수습을 했었다. 그때 검사님과 계장님은 검시 장소에 나를 데려갔다. 나는 그때 시체를 처음 봤다. 혼자 살던 30대 남성의 시체였다. 비릿한 냄새가 났고, 육중한 나체가 한 덩어리로 무력하게 뒤척여졌다. 생명이 빠져나가면 사람 몸은 그냥 고기나 떡 같구나, 그게 내게 남은 인상이었다. 눈에 띄는 상처가 없었고 부검까지 한 것은 아니어서 크게 징그럽지는 않았다. 검시를 다녀온 우리에게 세탁비가 만원인가 지급됐다. 피나 장기는 무섭고 징그러워서 잘 못 보겠다. 하지만 예전에 당직을 서던 시절에 변사기록이 접수되면 꼭 기록을 넘겨봤다. 인상을 찡그리고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면 늘 처참했다. 옷을 벗겨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이리저리 굴려지고 이런저런 수치스러운 분비물까지 확대된 채로 찍혀 있다. 사후 존엄을 지키려면 죽더라도 절대 범죄 피해자가 되지 말고 사인이 명확하게 죽어서 사건 기록으로 남지 말아야 한다.


나는 처음에 강력부에 지원을 했었다. 지원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은 경제범죄 전담 부서에 잘 적응해 근무하고 있지만, 그때는 살인자의 눈빛과 생각이 궁금했다. 하지만 강력사건을 조사하려면 사건 기록 속 거북한 사진이나 영상 증거들을 봐야 하고 슬픈 유가족과도 소통해야 할 것이다. 그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로써 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유하기에 존재가 증명되고, 뇌가 기능을 멈추면 더 이상 존재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 아등바등 살아서 뭐 하나 싶기도 하다. 어제는 문득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고 기도를 함으로써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신앙으로 현실의 고통을 일부 희석하고 삶의 원동력을 찾는 것일 테다. 문득 어딘가 기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었다. 이성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도 싫다. 비틀거려도 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싶다. 예전 부장님은 이런 내 태도를 오만하게 보시고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하셨지만 성경은 어릴 때 충분히 읽었으므로 더 볼 생각이 없다. 나는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다시 보지 않는다. 오만해 보여도 상관이 없다.


책에서 본바 세계적으로 타살보다 자살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누가 원치 않게 내 생명을 앗아가는 게 더 슬픈 일인지 본인이 자체적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종료하는 게 더 슬픈 일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나는 존엄사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적극적 안락사도 긍정적으로 본다. 적극적 안락사에 협조한 외국의 어떤 의사는 징역을 살았다고 한다. 나는 그가 사람을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고통받는 이의 궁극적인 존엄을 지켜줬다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기 위해 주변의 비난과 처벌을 감수하고 강력한 신념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생명 윤리는 한쪽의 잣대로만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술에 잘못 취한 어느 밤에는 목을 매달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책에는 술을 조심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성의 브레이크가 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고통뿐이었던 것 같고 더 버티고 유지한다고 해서 특별히 나아질 가능성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때, 지긋지긋한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 시끄러운 때는 비참한 현실을 영영 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장님께 대출한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한다. 박스에 가득 쌓여있는 영수증 몇천 장을 뒤져 나쁜 할아버지들의 혐의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다 찾아내고 난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