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이 가는, 몸 말고.
오늘은 우리 부장님이 모처럼 휴가를 쓰신 날이다. 물론 휴가를 쓰시고도 기이하게 사무실에 등장을 하셨지만 나는 부장님 부재의 기회를 틈타 오후에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짧은 현황보고를 하고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아 온다. 내가 가는 병원은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가는 곳인 티가 대놓고 나는 명칭은 아니다. 브레인 어쩌고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도 골라 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기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린아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대기실이 꽉 찼다. 머리에 뭘 붙이고 탁탁 소리를 내는 무서워 보이는 기계 치료도 진행하고 있었다. 한쪽 공간에서는 뇌파 검사도 하고 있었다. 축축한 수조를 가져와 머리에 뭘 잔뜩 붙이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오랫동안 뭔가를 측정하는 뇌파 검사는 나도 해봤다. 그 결과에 의거해 치료를 받고 있는 거다.
뇌와 신경과 관련된 치료는 평범한 사람들이 섣불리 시도하기 어렵다. 나도 그랬다. 콧물이 나거나 기침이 나거나 열이 오르는 신체 증상처럼, 정신 증상은 대놓고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큰 문제가 있는지, 그걸 꼭 치료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오랫동안 견디고 살았다. 괜히 그랬다.
훨씬 편안해졌다. 담담해졌다. 회복탄력성이 높아졌다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팽팽하고 탄력적으로 변한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더 이상 전처럼 하염없고 끝없는 축축한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정도까지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피가 흐르면 지혈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거나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될 때 그걸 구제하고 진정시켜 주는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왜 진작 못했을까 싶다. 나는 치료를 받고서야 마이너스가 아닌 평평한 영(零)의 상태가 되었다. 그건 평온에 가깝다.
오늘은 원장님께 그간 먹던 수면제를 줄여달라고 했다. 일과를 마치면 술을 마셔서 생각을 꺼버리기 때문에 내가 약기운으로 자는 것인지 술기운으로 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술과 약을 병용하므로 밤에 기억을 잃는 게 싫어서 그랬다. 일반적으로 그러면 엄청 위험하다고 하는데 반년 이상 그렇게 살아온 내가 아직 멀쩡히 살아 기능하는 것을 보면 치명적인 건 아닌가 보다. 먹는 약의 종류는 많지만 용량이 적어서 큰 영향을 안 끼칠 수도 있다. 내 몸이 튼튼해서일 수도 있고. 그런데 입술은 계속 찢어져 있다. 피곤한가 보다.
어쨌든 마음이, 신경이, 뇌가, 기능을 잠시 잃어버리는 상황은 흔하고, 생각보다 부끄럽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길 가다 넘어져 무릎이 깨져 연고를 바르는 것과 비슷하게 약을 복용함으로써 어떤 덧댐이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정상 궤도에 머물러 도느라 고통을 당연하게 감수해 왔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센 척하느라고 몰랐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