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나는 작가가 아닌데

by Ubermensch



나는 수사관이다. 공무원이다. 작가가 아니다. 글로써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다. 출간을 한 적도 없다. 내가 특별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전공이었던 국어국문학과에서는 작문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국어학에도 국문학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인근의 철학과에서 니체와 칸트를 읽으며 주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회과학대에 가서 언론문장작성법 등을 배웠고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판결문을 읽고 수사보고서 등을 작성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 글에는 보편적인 감정과 공감과 희망과 인류애를 크게 찾아볼 수 없다. 그게 그다지 호감이 아니라도 별로 상관은 없다. 나는 대중적으로 공감받고자 하는 글을 쓸 생각은 없다.


그냥 마구 토하고 싶을 뿐이다. 위에 음식물이 가득 차서 꾸역꾸역 토해내듯, 그저 내 경험과 감정과 일상도 일정 수위가 넘어서면 홀로 품고 있기 힘들고 버거워지므로 글로써 토해내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래서 예쁘지 않고 보기 좋지 않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봄이 왔다. 봄이 예상외로 느닷없이 빨리 찾아온 것 같다. 발레학원에서 한 달 동안 연습한 작품을 마무리하고 구석에서 곧 죽어갈 듯 땀과 숨을 토해내고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창문을 열고 봄이 왔다고 했다. 창문에서 따뜻한 봄 공기가 실내로 물밀듯이 들어찼다.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느닷없이 창문을 연 당시의 공기와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이하다? 갑작스럽다? 좋다? 봄기운이 창문을 통해 우리의 연습실로 와르르 들어찼다. 폭행을 당한 것 같았다. 봄이다? 이제 안 춥다. 아름다운 것 같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발레리나도 아니다. 지금은 봄도 아니다. 모든 게 뒤섞인 지금이 혼란스럽다.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