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의지
지난밤 꿈에서 나는 뽀동이를 몰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내비게이션은 직진을 안내하고 있었다. 쭉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위치를 재설정하더니 목적지가 우주라고 했다. 우주?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우주가 나온다고. 당황한 순간 도로의 지대가 갑자기 물로 가득찼다. 나는 뽀동이와 함께 침수되고 있었다. 엑셀을 꾹 밟고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우주의 물바다에 수장되기 직전 간신히 언덕에 안착했다. 가까스로 나를 구해낸 뽀동이는 그대로 기능을 잃은채 멈춰버렸고 나는 운전석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 가득 찬 물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재난 상황인가 싶었다.
그때 광활한 물 너머 사람들이 타고 있는 커다란 함선이 보였다. 나는 팔을 흔들어 내 존재를 알렸다. 구조되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조난된 사람이 몇 명 보였다. 그들도 그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양팔을 흔들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함선은 우리가 있는 언덕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함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차림새나 체형이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고 우주인이나 다른 시대의 어떤 전사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루프와 자루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물가 가까이에 있던, 구조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다가가 머리에 자루를 씌우고 루프로 목을 감아 차례차례 죽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죽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내게도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내게도 그 자루를 씌우려는 순간 조그맣게 살려달라고 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 언어를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머리에 자루는 씌웠는데 루프로 목을 세게 조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언덕 위에 모든 사람들을 다 제거했다고 여겨 다시 함선을 타고 돌아갈 때까지 죽은척하며 쓰러져 있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만 살려준 우주인에게 감사하며.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새벽 4시였다.
전날 퇴근길에는 차라리 내가 불치병에 걸리면 지금보다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간절하게 내일을 희망하니까. 내가 만약 그런 중한 병에 걸린다면 하루하루가 좀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삶에 어떤 드라마가 찾아오면, 비록 그게 비극일지라도, 이 무미건조한 일상에 어떤 색채나 생동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나 참 따분해하고 있구나, 하며 술로 마무리하고 잠들어서 꾼 괴상한 꿈이다.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고, 손에 자루와 밧줄을 든 우주인이 내게 다가온 순간, 나는 왜 순순히 따분한 삶을 종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두고 살려달라고 했을까. 그 난데없는 물로 가득 찬 우주의 흑언덕에서 혼자 뭘 어떻게 하겠다고. 어쨌든 내게 생존의지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뜻하지 않은 수확이다. 머리에 자루가 씌워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바다.
등 뒤로 부장님의 통화소리가 들리곤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 아빠딸- 하며 전화를 받으신다. 우리는 같은 희소한 성씨의 같은 파, 부장님은 우리 아빠랑 같은 대의 항렬이셔서, 부장님 부녀의 다정한 소통이 들려올 때면 나는 이미 소멸해버린 어떤 부녀관계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나랑 눈을 마주치면 부장님은 별 이유 없이 씩 웃어주신다. 그러면 나도 따라 씩 웃어드린다. 종종 저릿한 감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