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생활기록부를 간단하게 조회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성실하고 온순하고 급우들과 원만하게 어울리고 교칙을 잘 준수하며 등등의 표현이 사용된다고 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가령 '좀 더 절제된 표현방식과 일관성 있게 노력하는 태도를 기른다면' 이라든지, '공동체 의식이나 교칙 준수 의지는 다소 약한 편이나'라든지, '외모에도 관심이 많음' 이라든지, '가산점 0점'이라는 부분이 그렇다. 가산점이 0점이면 안 쓰면 되지 굳이 언급해 주신 선생님께 유감이 든다. 상위권 대학에서 주관하는 논술 대회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았고, 전국 4퍼센트 이내 성적이었음에도 수시에서 떨어진 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생활기록부를 확인해 보니 수시 탈락이 납득이 됐다. 상관은 없었다. 나는 정시 성적이 높은 우선선발로 대학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동학대로 교사가 입건되거나 뉴스에 나올 일이지만 내 십 대 시절만 해도 학생에 대한 체벌이 일상적이었다. 나는 걸핏하면 손을 들고 벌을 서거나 손바닥을 맞거나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거나 엎드려뻗친 채로 엉덩이를 맞은 적도 있다. 교복을 줄여 입고 다니거나 화장을 하거나 두발규정을 어기고 다니다 선생님께 가위로 머리카락을 싹둑 잘린 적도 있었다. 지각도 자주 했다. 연애도 했다. 연애를 하면 성적이 떨어졌다.
야간자율학습은 내키는 시간까지만 하다가 잠이 오면 하품을 하면서 가방을 쌌다. 건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너 어디 가니, 하면 집에 갑니다. 하고 가던 길을 갔다. 학생부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조금 재수 없게 보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전교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교무실에 불려 가 머리가 너무 길다, 파마를 풀어라, 손톱에 매니큐어가 그게 뭐냐, 하면, 저는 예뻐야 공부가 잘 됩니다. 제가 못생김이 신경 쓰여서 성적이 떨어지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건가요? 하며 대들다가 한 대 더 맞곤 했다. 반항적인 제자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을 보니 조금 우습기도 하고 나는 진작부터 싹수가 저런 색이었구나 싶었다.
내가 낸데 마이웨이식 삶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주관과 성취욕이 유독 강했던 것도, 특기와 흥미가 작문이었던 것도. 소녀시절의 나는 서른 중반이 넘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편상 꿈을 이룰 기회를 가져보지 못해서, 일찍부터 고정되었던 장래희망보다 별 볼 일 없는 현재의 모습이 서글프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검찰조직에 근무하고 있다. 여전히 글을 쓰고 기획을 한다.
기질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환경도 변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변하고 소속된 집단도 변하고 인생에 이런저런 사건은 계속 벌어지며 나를 이리저리 뒤흔듦에도, 타고난 본질적인 기질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온순하고 원만하고 공동체의식이 철저하고 두루두루 주변과 잘 융화될 줄 아는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면, 남들과 비슷하게 편안하고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까.
가치 판단 기준이 내부에 있고 목표지향적이라 주변 풍경을 살필 겨를 없이 경주마처럼 살았다. 자체적인 입출력이 커서 늘 마음은 혼란했고 시끄러웠다. 삶은 무수한 갈등과 충돌로 점철됐다. 그 갈등과 충돌은 나와 사회, 나와 규범, 나와 타자, 그리고 나와 나 자신을 오갔다. 그럼에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 날을 덜 세우고 무던해지는 방법을 알았다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 보편의 가치를 내재화할 수 있었다면. 삶은 지금과 전혀 다른 양상일 듯하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떡잎부터 그랬던 것이다. 어쩌면 씨앗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