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취미, 발레.
긴 연휴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특이사항이 전혀 없었다.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고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고 특별히 이런저런 깊은 생각에 잠기지도 않았다. 원래는 본업을 좋아하지만 최근 업무도 굉장히 따분한 영수증 무더기 정리에만 장기간 몰두하고 있어서 아무런 즐거움과 웃음기랄게 없는 상태로 수 주를 살고 있다. 이런 무미건조한 회색조의 삶 중 그나마 발레 할 때만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음악과 몸에 집중하고 고통을 견디며 땀을 흘리는 동안에는 현실의 이런저런 싫은 것들이 잊히기 때문이다. 연휴 동안 다행히 격일로 학원이 운영을 했다. 하루는 연습실을 빌려서 배운 작품을 혼자 연습해 봤다.
요즘에는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사람들이 꽤 생겼다. 학원이 북적인다. 발레가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지만 학원 두 곳을 다녀본바 연령대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게 있다. 시작한 지 년수로 따지면 좀 되지만 중간에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려 수개월간 절룩거리며 다니던 시절과 잦은 야근으로 몇 달간 여가시간이 없던 시기 등을 제외하고 레슨 횟수로만 따지면 200회쯤 받은 것 같다. 그래봤자 생 초급을 간신히 벗어난 정도다.
몸의 선과 굴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흰 타이즈를 신고 레오타드를 입은 채 거울을 보면 전신의 컨디션을 그때그때 체크할 수 있다. 동시에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수 있다. 어떨 때는 비교 우위를 느끼고 어떨 때는 열위를 느낀다. 세상 속 나의 위치란 상대적이고도 주관적인 것이다. 시기별로 너무 앙상하게 말랐네, 살이 보기 싫게 붙었네, 근육이 커졌네, 긴장했네, 가동 범위가 줄었네 늘었네 다 보인다. 몸은 투명하게 상태를 노출한다. 공을 들이거나 나태하거나 방심한 만큼 티가 난다.
유연성이 부족하면 범위가 안 나오고, 코어 힘이 부족하면 자세의 유지가 안 된다. 길고 지루하고 혹독하고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스트레칭도 해야 하고 근력운동도 필요하다. 무수한 시간과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과정이 동반된다. 꼭 삶 같다.
피루엣 턴을 깔끔하고 완벽하게 돌기 위해서는 몸통과 머리의 축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기둥 다리는 콤파스처럼 힘 있게 바닥에 꽂혀 있어야 한다. 몸통은 공중을 향해 풀업을 유지해야 한다. 팟세 한 한쪽 다리는 단단한 날개처럼 옆으로 활짝 고정해 안으로 말리지 않아야 한다. 내 몸의 각 부위를 각자의 역할에 맞추어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회전하면서 몸의 축과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겁먹지 않고 자신감 있게 회전할 방향으로 팔을 뻗어 쳐내는 것. 각각의 연쇄 과정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지만, 한 단계라도 허술하면 중심을 잃고 휘청이게 된다.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 겁을 내고 움츠러들면 오히려 더 못 돈다. 이쪽 방향은 잘 되다가 저쪽 방향은 또 안된다. 익숙한 방향이 아니면 팔다리가 또 따로 논다. 때때로 머리와 몸도 따로 논다.
선생님은 작품 수업을 하면서 무대에 오른 이상 실수를 해도 이미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당황하거나 내색하지 말고 다음 동작을 쭉쭉 나가고 기억이 안 나면 뭐라도 채워서 움직이라고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유롭고 스스로 최고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우아하게 마무리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비록 근육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등줄기를 타고 땀은 비 오듯 흐르며 벌벌 떨려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태도를 보이면 남들도 그렇게 봐준다고.
내 신체를 포함한 기타 등등의 한계는 분명 어느 선까지는 정해져 있을 것이지만 그 선은 아직 충분히 멀어 보인다. 그것은 내가 단련하고 채우고 발전할 만한 부분이 그만큼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악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