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상념
공기의 냄새가 있다. 해가 덜 뜬 새벽 특유의, 새 계절의 입장을 담은, 어떤 장면을 탁 켜주는, 봉인된 감정을 열어 젖히는 특정 공기의 냄새. 사주상 내 본연의 기운이 물이고, 주변에 불이 가득 차 나를 바짝바짝 말리고 태우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물에 이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기의 냄새는 비 내리는 날이면 유독 짙다. 숨을 크게 들이켜 본다. 비 오는 날을 가장 좋아한다. 묵고 쌓여있던 것들이 정화되는 기분이 드는 까닭에.
피부에 닿는 이불은 유독 보드랍고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게 늘어진다. 하지만 창 틈새로 스며드는 계절의 냄새는 기어코 나를 일으켰다. 날카로운 한기가 마침내 떠났다고 알려주는 듯 물비린내가 상쾌한 온도로 들이쳤다. 겨우내 굳어있던 어딘가에 미세한 파동이 느껴졌다. 문득 사람의 품이 그리워졌다. 단단한 무게감이 있는, 체온이 뜨겁고 커다란 품에 푹 파묻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키는 특별히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어렸을 때는 키가 조금 더 작았으면 했다. 남자친구에게 안겼을 때 그 어깨너머 내 머리카락 한 올도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연인의 품에 푹 감싸져 있는 그 순간만큼은 험한 바깥 세상의 풍진과 풍파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항상 다른 인간 존재를 보호막으로 둔 채 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런 품을 떠올리고 있을 때 세상의 많은 연인과 부부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러 부러워졌다. 왜 나는 적당하고 평범한 품에 안기지 못했는지, 왜 어떤 품에서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건지. 어떤 품은 왜 내게 허용되지 않았는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난 참 답이 없는 사람이다. 의문만 많고.
내게는 9년간 끌어안고 자느라 솜이 다 터져 몇 번이나 꼬매서 꼬질꼬질하고 누덕거리는 커다란 허스키 인형밖에 없다. 내가 끌어안을 순 있지만 인형에 달려있는 팔이 짧아 반대로 인형이 나를 안아줄 순 없다. 체온도 없고 별 무게도 없고 그저 폭신한 촉감밖에 없다. 그래도 그 촉감은 여전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