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남고, 채우고.
오늘은 인사이동 전 마지막 출근일이다. 우리는 국가직 공무원이므로 대규모 인원이 전국적으로 이동을 하기도 하고, 청 내부에서 부서가 바뀌기도 한다. 나도 청내인사 대상자였다. 내 원 소속 부서는 다른 형사부이지만 현 부서에 지원을 나와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너무 적응을 해버렸기 때문에 떠나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지원근무 신분이라 이번에 필수적으로 희망 부서를 3지망까지 적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부장님은 내게 모든 지망을 다 여기로 적지 그랬냐고 하셨다. 부장님의 마음은 잘 알겠으나 그렇게 장난스럽게 적어 제출할 수는 없으므로 1지망은 이곳, 2지망은 원소속 부서, 3지망은 다른 평범한 형사부로 적어서 냈다. 내가 지망한 세 곳 모두 쉽게 갈 수 없는 선호부서이므로, 나는 초조한 채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청은 어차피 희망한 대로 보내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부서는 경력 20년 이상의 고참 계장들과 부장검사님들이 1:1로 근무하는 곳으로써, 나 같은 뽀시래기 계장이 있기엔 약간 부자연스러운 곳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내 본 소속 부서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치열한 곳이라고 했다. 나는 본소속 부서든 지금 이곳이든 감히 희망지에 적지 않았었고 좋은 부서로 보내달라고 누구에게 부탁을 한 적도 없다. 손길 여부는 모르겠다. 나는 특별한 빽도 없다.
반년 간 함께 했던 앞자리 계장님은 이번에 승진을 해서 떠나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에게 많이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렸다. 계장님께서는 선배로서 당연한 거라고, 본인이 부족해서 더 많이 못 알려주셨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나는 왠지 찡해졌다. 충분히 많이 배웠는데.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분이 오신다. 반년마다 사람이 들고 난다. 누군가 떠나 공석이 된 자리를 누군가 새로 채운다. 내가 떠나기도 하고 남기도 한다. 10년간 겪어온 인사이동이지만 이 시즌이면 꼭 마음이 어지럽다.
10년 전 같은 부서에서 수습을 했던 후배가 있다. 막내 전화받이 노예생활 1년간 눈물 콧물 범벅으로 지내다 처음 받은 후배라 얼마나 귀중했는지 모르겠다. 두어 달 뒤 수습을 마친 후배는 정식 발령을 받아 떠나는 날 울음을 터트렸는데, 나는 발령받은 청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우리는 같은 청에서 다시 만나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을 때 후배는 나랑 헤어지는 게 슬퍼서 울었다고 했다. 내게 본인 울음을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냐며 발끈했다. 후배는 어느덧 쑥쑥 자라 이번 인사에 마침내 계장으로 승진했다. 자랐다고 말하긴 뭐한 것이 사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다. 같이 늙었다고 볼 수 있다.
후배는 이제 처음 형사부에 발령받아 본격적인 수사를 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어 겁이 난다고 걱정이 많았다. 나는 내가 그동안 쓴 수사보고서나 가진 자료를 잔뜩 보내주고, 옆에 앉혀놓고 기록 보는 법과 시스템 사용법, 내가 그간 검사님들과 선배님들께 배운 요령들을 몇 시간 동안 설명해 줬다. 후배는 너무 막막했는데 내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자기 전 베개에 뿌리는 향수와 내가 아직까지 못 먹어본 두쫀쿠를 선물로 줬다.
위로부터 넉넉히 받았으므로 나 또한 내 아랫사람에게 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당연하고 마땅하다. 이번 인사 결과 나는 지금 부서에 더 이상 지원 신분이 아닌 정식 발령을 받아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 부장님은 춤추는 이모티콘을 보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