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통과해왔던
전날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음악을 크게 틀고 무시했다. 아침 출근길에도 소리가 좀 나는 듯했다. 음악을 크게 틀고 무시했다. 생산된 지 10년 차인 내 뽀동이는 그간 무수한 성형과 교체를 거쳐 더 이상 외관 수리는 포기하고 오로지 운행 기능만 유지하며 굴러가고 있다. 주행 중 처음 보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 문제, 정차 후 시동을 끄시오. 회사 도착 7킬로미터 전이었다. 회사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7킬로미터는 걸어가기에 먼 거리다.
일단 신호에 걸린 상황에서 시동을 껐다 켜보니 경고 메시지가 사라졌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고차 시세가 이제 600만 원 남짓한 차 가격보다 수리비가 비쌀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공포스러웠다. 회사까지 남은 7킬로미터 운행 도중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폭발해서 차가 불에 탈까 봐, 탈출 목적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운전했다. 삶에 큰 미련이 없다 하더라도 불에 타서 죽고 싶진 않았으므로.
다행히 기특한 내 뽀동이는 폭발하지 않고 회사까지 무사히 나를 데려다주었다. 옆 검사실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우리 부장님은 내가 우수수사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주시며, 내게 어떤 사건의 조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나는 우수수사관이 안 되어도 상관이 없고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다 하겠다고 했다. 옆방 부장님께서는 나를 우수수사관님이라고 불러주시며 알이 꽉 찬 생선을 접시째로 밀어주셨다.
지금 직장에 발령받고 3년간 매일 통과했던 터널이 있다. 어제 퇴근을 하고 가던 중 터널 진입 직전 차가 꽉 막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평소에도 퇴근시간대에 막히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양 차선의 차들이 아예 미동도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뒤에 있는 차들이 조금씩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내 뒤에 있는 차와 나 사이 간격이 벌어졌다. 그때 내 앞 차가 아주 조금 앞으로 갔다. 앞으로 가면 터널 안으로 진입, 후진을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내 앞차는 터널 진입을 선택했다. 뒷 차는 후진을 선택했다. 챗 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내게 전진을 권했다. 나는 후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기준으로 차 수십대가 조금씩 후진을 시작했다. 운전을 시작한 이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정리를 해 주는 경찰도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터널 안 차량들은 여전히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막히는 퇴근시간대 이 기묘한 후진 행렬이 언제 끝날지, 과연 후진의 끝에 옆 차선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터널 진입 전 차선변경을 막는 펜스가 1킬로미터 정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 수십대의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조금씩 후진을 해서 마침내 차선변경이 가능한 곳에 이르렀다. 결국 나도 터널 옆 차선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터널 앞을 지나가다 보니 탄 냄새가 나고 전소된 차량과 경찰차, 소방차가 줄지어 있었다.
딱 터널 진입 직전 전진과 후진의 선택의 기로였다. 내가 전진을 선택했다면 터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후진을 선택한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굳이 그 터널을 통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터널 옆길도 집까지 전혀 돌아가는 경로가 아니었다. 나는 왜 지난 3년간 그 막히는 터널 속을 꼭 거쳐갔을까. 순간의 선택과 우연은 경로를 재설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