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사건 기록 첫 장을 넘긴 이후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런 쓰레기. 쓰레기.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소 욕을 싫어하는 내가 쓰레기라는 단어를 남발하자 부장님께서는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고객님이라고 해야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월급을 받는 거야, 하셨다. 나는 어른 앞에서 나쁜 말을 한 것이 아차 싶어서 이후 부장님께 피의자를 언급할 때 언어를 순화해 표현했다. 뚜레기. 라고.
지난주에 새로 오신 앞자리 대장군 계장님께 쓰레기의 악행을 흥분하며 설명하고 있었더니, 부장님께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나오셨다. 아, 쓰레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고객님이라고 하라니까.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쓰레기로부터 상처 입은 피해자 이야기를 했다. 사건과 무관한 후배 눈이 붉어지며 눈물이 핑 고였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핑 고였다.
쓰레기는 멀끔한 정상인의 모습으로 조사를 받으러 왔다. 혀를 내두를 법한 악행과 저세상 개차반 짓거리를 일삼던 기록 속 모습과 달랐다. 가진 게 없고 약한 사람들을 하대하고 막대하는 모습이 특히 추잡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 앞에서 불필요하게 공손한 태도로 굽신거렸다. 나는 조사 시 절대 피의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인권보호수사준칙 프린트물을 건네주고, 진술거부권을 마치 유치원 선생님처럼 상냥한 말투로 낭독해 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떨었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막상 앞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물 한잔을 권하고 진정할 시간을 줬다.
쓰레기는 말이 굉장히 많았다. 굳이 끊지 않고 다 들어줬다. 그는 몹시 억울해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왜냐하면 그의 평소 행실로 추측컨대 충분히 그런 일을 당할 만큼의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비도덕적인 본성과 그로부터 비롯된 행실과 그가 느끼는 억울함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경찰도 검찰도 그가 호소하는 억울함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의 원처분은 불기소였다. 그를 고객님이라고 부르라던 부장님은 내가 조사를 마친 후 구형을 급격히 상향한 구공판으로 결정하셨다. 불기소와 구공판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보다 경미한 범죄의 처분으로는 구약식이 있다. 정식 재판을 받지 않고 약식으로 벌금형을 구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공판은 실제 법정에 출석하여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건 당사자들만이 진실을 알 것이다. 내 앞에서 양 당사자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을 말했을 것이다. 판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