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기 싫은 일

을 하면 케이크가 생긴다

by Ubermensch






귀찮은 업무연락이 왔다. 곧 공소청으로 변할 이곳에 보완수사권을 남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찰에서 사건 송치 이후 검찰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수사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상세하고 복잡한 월별 통계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검사실은 보통 검사, 계장(수사관), 실무관으로 구성된다. 이 귀찮고 번거로운 통계를 누가 할지 여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쪽지는 모두에게 수신되었다. 쪽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검사가 매일 사건 처분을 할 때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수사를 했는지 기록하라는 내용이 적혀있긴 했다. 모든 사건의 처분 당사자는 검사이므로 매일 체크를 해둔다면 한 달 동안 처분된 수십 건의 사건 수사상황을 일일이 추적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 딱히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 귀찮은 일을 누가 해야 할지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협의된 바는 없었다. 검사실 구성원 셋 중 누구나 하려면 할 수는 있었다. 우리 실무관님은 양쪽 검사실의 업무를 겸해 맡고 있으므로, 만약 실무관님이 한다면 두 검사실의 통계를 내느라 두 배의 부담이 될 터였다. 하지만 우리 부장님은 실무관님께 찾아가 통계 작성 방법을 알려주셨다. 나는 부장님께 실무관님 말고 저한테 알려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했다. 사실 그 업무연락 쪽지를 보는 순간부터 나이 드신 부장님이 침침한 눈으로 통계를 작성하시거나, 기록 조제가 본연의 업무인 실무관님이 양쪽 검사실의 한 달 치 수사상황을 정리하는 통계를 내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것 같았다. 다들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려고 눈치싸움을 하느니 내가 해치우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하기도 하고.


부장님은 내 주변을 서성이며 이거 엄청 수작업 노가다야. 양이 좀 많은가? 하셨다. 어휴 많죠. 오전에 조사준비는 못하겠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통계를 내야겠습니다. 그리고 부장님. 쪽지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검사가 해야 하는 것처럼 되어있는 거 보셨나요? 옆방 김 부장님은 직접 하신다더라고요. 부장님은 계장을 참 잘 만나셨네요.


제출 기한이 임박하자 취합하시는 서무 계장님께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앞자리 계장님이 부재중이셔서 실무관님이 전화를 받았다. 옆방 부장님께서 작성한 통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아기 실무관님은 수화기를 거세게 집어던졌다. 화가 잔뜩 나신 듯했다. 그 방은 계장이랑 실무관이 서로 일을 떠넘겨 부장님께 일을 시키냐며 한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룰루랄라 모닝 담배타임을 갖고 오신 계장님도 뭔가 통화를 하신 후 다음 달부터 통계를 직접 내시기로 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어제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옆방 부장님께서 직접 하신다고 하니 오지랖인 것 같아 가만히 있었는데, 그냥 내가 계장님께 방법을 알려드릴 걸 그랬다. 아침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된 실무관님은 오전 내내 기록을 퍽퍽 놓고 화가 가시질 않는 듯했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은 그냥 내가 해버리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생색을 내는 것도 재밌다. 막상 피한 것 같은 일은 종종 눈덩이처럼 뭔가 나쁜 게 더 붙어서 내게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냥 빨리 해치워버리는 게 낫다.


점심을 같이 먹는 후배가 술병이 나서 출근을 못했다. 사무실에 앉아있었더니 부장님께서 우리 운곡공파가 왜 혼자 있냐며 데리고 나가 케이크와 햄버거를 사주셨다. 나는 화가 난 아기 실무관님을 위한 딸기 케이크도 사가자고 했다. 예쁨을 받는 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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