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들은
귀신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정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귀신이 보인다면 현실과 구분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아마도 귀신을 못 본 척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귀신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과거가 보인다. 기억이 보인다. 매일의 출근길에서 운전을 하다가, 늘 지나치던 길을 걷던 도중 특정 장면이 시야에 나타나 재생된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스토리텔링식 회상이 아니라 장면과 영상 그 자체로 튀어나온다. 그러면 나는 귀신이 보이지만 평범하게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애써 그것을 못 본 척한다. 동요하지만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어금니를 깨물고 무시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혼자 있을 때도 그렇다. 그 과정은 약한 통증을 남긴다.
그건 내 시야에 담기고 있는지 모른 채 걷고 있던 누군가의 모습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시선에 담긴 내 모습일 때도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던 내가 그 순간의 풍경과 함께 나타날 때도 있다. 그날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아무 개연성 없이. 어떤 장면은 몇 번이고 반복된다. 마치 한 많은 물귀신이 들러붙어 발목을 질질 잡아 끄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내게만 보이는 그런 귀신같은 장면들. 그리움인지 애도인지 아무것도 아닌지 현상에 대한 명칭을 붙이기는 어렵다.
세월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파도가 치면 바위도 닳고 산도 닳는데 왜 어떤 것들은 섭리를 거스르고 그 강렬한 존재를 유지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런 예고 없이 재생되는 그것을 강제로 감각해야 하는 일은 고문에 가깝다. 내 위로 떠있는 해가 맑고 밝고 따뜻해질수록 더. 왜 느닷없이 이런 걸 보고 느껴야 하는지 특정하지도 못할 대상에게 따져 묻고 싶다. 그만 좀 꺼지라고.
봄바람이 폐부에 들어찬다. 공기는 결코 비어있지 않다. 그것을 구성하는 향과 온도와 먼지와 습기는 장면을 만들고 나는 꼼짝없이 등장인물이면서 관객으로 세워진다. 어떤 것들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건 몹시 무서운 일이다. 봄은 잔인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