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왜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축복받은 존재였을까. 모태신앙이라 세례는 받았다. 신을 믿지는 않는다.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당장 극단적인 선택을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연히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울음을 터트리는 드라마틱한 반응 대신 아, 그렇군요. 하고 남은 시간 덤덤하게 이 지난하고 따분하고 지긋지긋한 삶을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일 뿐이다.
요즘 날이 참 좋다. 추운 겨울이 끔찍하게 싫었다. 미세먼지가 기승이기는 하지만 해가 길어져 어두운 밤이 줄고 분홍 꽃이 물들고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더 이상 차고 날카롭지 않다. 뭉근한 봄공기가 스민다. 그 애매한 온도는 겨우내 냉하게 굳어 있던 마음을 헤집으며 파고든다. 그리고 지금 내 위치와 상태를 환기시킨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하는 자각을 준다. 그건 비참에 가깝다.
따분하다. 지겹다. 행복한 감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약으로도 나아지지 않는다. 의미 없는 시간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다. 이런 빈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게 무섭다. 그 어떤 가능성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계속 잠을 잤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들을 피하고 싶어서다.
과거의 무엇을 누구를 원망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은 과거 내 모든 순간에 대한 선택의 결과 혹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결과다. 미래의 무엇을 기대할 것도 없다. 바깥 풍경이 밝고 따뜻한 분홍빛으로 변할수록 그렇지 못한 무엇과 비교가 돼서 더 숨어버리고 싶어진다. 계속해서 눈을 꼭 감은 채로 이불에 파묻혀있고 싶다. 봄날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 왜 계속 겨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