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범죄의 상관관계
오늘은 정신병이 5개쯤 있는 피의자가 조사를 받으러 왔다. 양극성정동장애, 조현병, 망상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아기 실무관님께 저에게만 이런 피의자가 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고 물어봤다. 실무관님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 음 저번에 계장님 구속 사건 피의자가 멀쩡했잖아요. 원래는 꼭 정신병을 달고 왔는데. 그러니까 정신병 총량의 법칙에 의해 이번 피의자가 균형을 맞추러 오는 거죠.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내게 조사받는 피의자들만 각종 특이한 정신병을 앓고 있고, 앞자리 계장님께는 늘 평범한 사기꾼들이 온다. 우리는 분명 같은 경제범죄전담 부서인데. 예전 앞자리 계장님은 내가 어떤 기운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만 끌어모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쯤 되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듯 싶다. 조사 준비를 위해 기록을 넘겨보던 중 경찰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이때, 피의자가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리다.
문: 피의자는 왜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리는가요.
답: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웃음이 막 나요.
수사관서에 불려 와 조사를 받으면 웃음이 아니라 울음을 터트리거나 흥분을 하는 등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피의자가 얼마나 계속해서 웃었으면 저런 상황이 조서에 굵은 글씨로 적혀있는지 의아했다. 오후 2시에 조사 일정을 잡는 게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는 우리 부장님의 이해되지 않는 질책으로 오늘 조사는 오전 10시로 잡았다. 예상외로 피의자는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모든 범죄 사실도 순순히 인정했다. 피해자에게 피해변제도 충분히 했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도 받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도 제출받았다.
내가 심각한 어조로 피의사실에 대해 묻고 있던 중 피의자의 표정이 순간 씰룩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경찰 조서에서 봤던 그 장면이 재연된 것이다. 그녀는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웃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이전에 그녀를 조사했던 경찰처럼 굳이 그 기묘한 상황을 조서에 적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병세가 느껴졌다.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정신이 병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은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몇 번이나 입원을 권유했고,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한 이후 결국 강제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부장님은 내게 진짜 정신병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정상인 사람들은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부장님의 기준에 따르면 스스로 정신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정상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이 사건에 대한 부장님의 구형은 벌금 2천만 원이었다. 오늘 조사를 마친 나에게 부장님이 의견을 물어보셨다. 엄벌? 선처? 피의자의 나이가 어리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했던 특정 시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와 합의에 이른 점, 충분한 피해보상을 한 점, 피해자도 어린 피의자를 착취하였던 점을 감안하여 선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종 구형은 벌금 500만 원으로 하향됐다.
피의자는 타고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예뻤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의 병과 혼란을 방치해서 이상한 범죄 전력이 생긴 것이다. 생명을 잃을 뻔도 했다. 몸에 상흔도 남았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앳된 얼굴로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치료를 잘 받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