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달리, 놀이처럼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앎을 축적하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시험을 봐서 평가받는 것도 좋아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얼마나 우등한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도 좋아한다. 대신 단순 노무는 말고. 이전 부서에서는 단순 행정 업무라든지, 기록 노가다 업무가 많아서 힘든 점이 많았다. 나는 반복적 루틴 업무에 취약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단점이 극대화되던 곳이었다. 지금은 기록에 파묻혀 보고서나 조서를 쓰고 수사만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이렇게 일을 하고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만큼 적성에 잘 맞고 즐겁다.
부장님 집무실 문을 두드리며 똑똑, 안녕하십니까 수사보고 공장에서 나왔습니다. 열 건 제조해 왔습니다. 이제 더 할 게 없으니 기록을 더 주세요, 한다. 우리 부장님은 이번엔 연쇄 사기마가 나타났다! 하며 같이 놀아주신다.
우리는 연쇄 사기마에게 당한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받은 실질적 피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처벌을 받는 사기꾼을 응징할 방법을 생각한다. 교도소에 보내는 건 오히려 세금이 더 들어. 부장님이 말씀하시길래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연쇄 사기마의 장기를 팔아서 피해자들한테 돈을 주면 되겠어요. 부장님은, 그건 현실성이 없고. 북한에 보내서 노동력 자유 이용권을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오지 탄광에 보내서 일을 시키고 돈을 보내라 하든지 말이야.
회사를 좋아하고 일을 즐겁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놀이처럼 생각하면 된다. 가령, 피해자가 수십 명 딸린, 기록을 쌓으면 내 허리 위까지 올라올 만큼 길고 따분해 보이는 사건을 파악해야 하는데, 복잡한 코인이나 주식 관련 사건이라 하면. 일단 그 방대한 양과 숫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오기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든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혹시 회사에서 잘리고, 전업 투자자가 될 수도 있는데. 이걸 꼼꼼하게 잘 읽고 파악해 두면 이다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기도 안 당하고 말이야. 어차피 사기당할 돈도 없지만. 같은 류의 생각을 하면서 보다 보면 열몇 권의 두꺼운 기록을 읽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어진다. 생전 처음 보는 발음하기조차 힘든 죄명에, 내가 살면서 굳이 애써 찾아다녀도 겪기 힘들 만한 사건을 보게 될 때에도, 마치 모험을 떠나듯 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며 소설을 읽듯이 파악하면 또 재밌다.
몇 년 전 법무부에서 근무할 때도 나는 마치 학교를 다니듯 회사를 다녔다. 학교를 다닐 때처럼 늦잠을 자고 살금살금 지각하다가 사무관님께 불려 가 꾸중을 듣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둘 다 30대의 법무관과 검찰 수사관이나 서로 뛰어다니며 뻐큐를 날리며 싸우고, 그 녀석이 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어깨를 콕콕 찌르며 괴롭히길래, 토라져서 절교 선언을 하면, 마치 담임 선생님 같던 사수 계장님은 우리 둘을 불러놓고 중재를 하곤 했다. 둘 다 미안하다고 하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고. 물론 우리도 공식적 자리라든지 업무 상황이라든지 외부인을 대할 땐 서로 근엄한 사회인인척 한다.
야근을 일삼고 조사 준비다 뭐다 일에 치일 때도 위트를 잃지 않으면 할 만하다. 우리 믿을 구석 비빌 언덕 검사님하고 인지 사건을 함께할 때면, 우리끼리 사건 관계인의 별명을 지어 부른다. 공탁금 수령 의사를 묻기 위해 통화를 하다 친해져 버린 아주머니가 있는데, 자꾸 위증한 사람들이 있다며 직접 수사를 해달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주렁주렁 제보를 해주어서, 내가 직접 수사를 개시하게 만든 고소인 아주머니의 별명은 호박넝쿨 아줌마가 됐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능글맞음과 변명이 진화하던 피의자에게, 검사님은 마치 능글맞음이 장어 같은 할아버지라고 했는데, 그 이후 우리끼리 얘기할 때 그 피의자는 이름 대신 장어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됐다.
재판을 그냥 업무의 현장으로 보지 않고, 간혹 연인 간의 싸움이 격해져 범죄가 된 경우라면, 검사님과 나는 각자의 성별 입장에 대입해서 격한 논쟁을 벌일 때도 있다. 괜히 감정이 섞여 검사님은 전 여자친구한테 잘못해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나 보죠? 하면서 막 쏘아댈 때도 있다. 검사님은 피고인이 잘못한 건데 왜 나한테 그러냐고 안 그래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집에 말이 안 통하는 고양이 두 마리밖에 없고, 통근도 하루 3시간이나 걸리고, 일과 후 발레 수업까지 다녀오면, 대부분의 깨어있는 사회적 시간은 회사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생기는 일, 대하는 사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내게는 다 특별한 일상이다. 그래서 회사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출근을 해서 돈을 버는 따분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현상과 사건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선명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기왕이면 즐겁게, 가치 있게 잘 보내서 좋은 방식으로 남기려는 편이다.
타고나기를 건물이 몇 채씩 있어서 임대수익만으로도 충분한 생활의 영위가 가능해 회사에 안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만 잔뜩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공노비든 사노비든 밥벌이를 해야 한다면, 기왕 하는 거 조금 더 의미를 두고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어쨌거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고, 보통은 그게 직장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