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철가루

마음을 보답하지 못한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

by Ubermensch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지난 남자 친구들의 눈에 씌인 콩깍지와 그들이 내게 흘러넘치게 준 사랑 덕분에 내 자기애는 좀 유별난 경향이 있다. 내 유구한 주취의 역사 속 다채로운 주사 중, 자뻑이 치미는 낯부끄러운 주사에서 탄생한 몇 가지 글과, 글에서 은은하게 뿜어나오는 겸손이라곤 보이지 않는 뻔뻔한 태도 때문인지, 내 글을 읽은 몇몇 사람들은 어떤 환상에 빠진 듯 내게 호기심을 갖고 접촉을 시도한다. 나는 낯을 몹시 가리고, 길고양이처럼 경계심이 많기 때문에 그런 요청에 응할 수가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내가 마치 대단한 뭐라도 되는 사람인 양 안하무인으로 쌀쌀맞고 뻔뻔하게 굴 때가 많은데, 스스로조차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채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이 아주 많았다.


지금은 논알코올 또렷한 정신 상태이므로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나는 엄청나게 예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평범하다. 그리고 착하고 상냥하고 나이스한 성격도 아니다. 내 전 남자 친구들은 내 성격은 감수하고 만난다고 했고, 고소한 정수리는 나랑 대화를 하다 보면 킹콩처럼 양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다가 강물에 뛰어들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철가루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그게 어떤 심정인지 공감한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뻔뻔한 나는 내 전 남자 친구들에게 항상 말하곤 했다. 네가 너무 부러워. 왜? 왜냐면 내가 네 여자친구잖아. 얼마나 좋을까? 참 부럽다.


사실 입장을 바꿔 내가 갑자기 성별이 남자가 되고 나에 대한 기억이 있는 채로 여자인 나랑 연애를 할 기회가 있다면, 나는 단박에 거절할 것이다. 절대 못 만난다. 평소 참 예쁘고 성격이 좋고 나를 마치 아기처럼 돌봐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친한 여자 동생에게, 내가 남자라면 너랑 사귀고 싶어. 하며 수줍게 고백을 했더니, 난 싫어. 언니 패악질 절대 못 받아줘.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패악이라고 표현할 것까진 없는 것 같은데. 좀 너무한다 싶었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참 예쁜 여자도 많고, 착한 여자도 많고, 똑똑한 여자도 많고, 헌신적인 여자도 많다. 물론 저 모든 장점의 교집합에 속하는 여자는 흔치 않겠지만.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장점의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내가 꼭 사회 보편적 기준에서 좋은 여자친구감, 아내감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장점이 크긴 하지만 단점도 그에 못지않게 큰 사람이다.


하룻밤을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도 있고, 놀랄 만큼 절절하고 순수하게 커다란 마음을 표현하는 남자도 있고, 좀 특이하다 싶어 호기심을 가졌다가 빠져드는 남자도 있고, 그냥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도 있다. 반면 넌 못생겼지만 생각이 매력적이라 좋다는 남자도 있었다. 오로지 글을 보고 이성적 관심을 표현한 남자도 있고. 처음 보는 유형이라 신선하고 특이해서 좋다는 남자도 있었다. 너무 새침하고 싸가지가 없어서 정복욕을 자극했다는 남자도 있고. 내 기구함과 외모에 보호본능이나 부성애를 느끼며 빠져드는 남자도 있고. 뭐 살면서 가지 각색의 이유로 많은 남자들이 내게 고백을 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하나의 존재이므로 그 모두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다. 그 마음을 거절하는 마음도 굉장히 편치 않다. 내가 뭐라고 남의 마음을 뭉개나 싶어 엄청 슬퍼지기도 하고. 나는 남자의 재력도 집안도 직업도 학벌도 능력도 중요하지 않다. 성격도 마냥 착하고 순한 것만이 좋은 게 아니다. 그냥 나만의 꽂히는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연애의 시작이 어렵고, 지금까지도 결혼을 못하고 이렇게 혼자 늙어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혼자가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나는 길도 잘 못 찾고, 몸집이 조그매서 무거운 것도 잘 못 들고, 허구한 날 뭘 빠트리고 놓치고 여기저기 잘 처박고 다니기 때문에, 이런 구멍 난 나를 좀 돌보고 챙겨줄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라도 나를 소중하고 대단하게 여겨야 이 험난한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예뻐하긴 하지만, 객관적이고 사회 보편적 관점에서 내가 그리 엄청나고 대단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 그러므로, 내게 귀중한 마음을 표현해 주었지만 응답받지 못한 남자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나와 함께하지 못하는 삶이 오히려 나와 함께하는 삶보다 훨씬 더 평온하고 행복할 것이고, 세상에 나보다 더 예쁘고 착하고 좋은 여자가 많고, 내가 마음을 주지 못한 이유는 당신들의 무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의 이런저런 문제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