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액션 전문가

사회생활의 고달픔

by Ubermensch









남자들에게는 어떤 특정한 유전 인자가 있어서, 나이가 서른 중반쯤 되면 개그를 할 수밖에 없는 유전적 지시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군대에서 여자들은 모르는 특수 훈련을 받아오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아저씨들은 꼭 커다란 강아지처럼 들뜬 표정으로 다가와 아재 개그를 선보이곤 한다. 그에 대한 반응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면 내 얼굴과 몸의 근육은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


타고나기를 리액션이 없고 무미건조하며 통상적 주제에 전혀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대화에도 참여하기 쉽지가 않다. 소개팅도 어찌 저찌 에프터까지는 받는데, 한 번도 소개팅에서 연애까지 이어져 본 적이 없다. 주변 평가에 의하면 내가 딱히 빠지는 조건은 없으므로 리액션을 포함한 성격 장애가 문제라고들 한다. 다시 아재 개그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직장 상사라든지 선배가 내 눈을 바라보며 다가와 농담과 개그를 시작하면 정말 괴롭다. 나는 그럴 때 일이 몹시 바쁜척하거나, 귀가 안 들리는 척하거나, 다른 곳을 보는 방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애써본다.


한때 꽤 친하게 지내며 일했던 검사님이 하루에도 몇 번씩 쉴 틈 없는 개그를 날리시기에, 검사님. 제가 단 한 번도 검사님 개그에 웃어드린 적 없던 거 아시죠. 그런데도 왜 자꾸 하시는가요. 했더니 저도 알지만 참을 수가 없어요, 하셨다. 본인 딴에는 나름 재미있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헛웃음조차 유발하지 않는 개그를 듣고 있자면 그대로 펑 터져 먼지가 되어 소멸해버리고 싶은 마음만 들뿐이다. 어느 날은 커다란 강아지 같이 생긴 그 검사님이 자체 제작한 유머를 들고 기대에 찬 커다란 강아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시며 이 말뜻을 이해했냐고 물으시기에, 평소처럼 못 들은 척 외면 할까 하다가 그래도 하급자로서 사회적 도리가 있지 싶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라고 대꾸했다. 옆자리 검사님은 우리 검사님의 개그 말고 내 반응이 더 웃기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듯 나는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일지라도, 아무런 재미가 없는 아재 개그만큼은 절대 웃어주지 못하고 무시나 냉랭한 반응으로 일관하는데, 그 지위 높은 아저씨들은 포기를 모른다. 우리 부장님도 호화로운 집무실을 벗어나 하루에 스무 번 정도 내가 있는 자리로 찾아와 이런저런 농담을 하신다. 부장님은 나이도 많으시고 우리는 같은 본관의 먼 친척뻘인 데다, 부장님은 기수가 아주아주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평소에 아무리 시건방진 계장이었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무시나 냉대의 반응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사회적 지위가 높으셔서 그런지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 무리수 개그를 하진 않으신다. 나름대로 재미있을 때도 있다. 연쇄 사기마라는 표현이라든지.


비록 우리 부장님께 딸린 수사관은 나 하나뿐이라 리액션의 오롯한 임무는 나에게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와 사무실을 공유하는 옆방 부장님 소속의 계장님과 우리 두 검사실의 업무를 겸하는 실무관님의 성격이 나와 달리 너무나도 사교적이고 상냥하고 활달하셔서, 나는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다. 정말이지 귀중한 동료들이다. 매일 큰절을 올리고 싶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면 나는 대부분 고막을 닫은 채 일에 집중한다.


메신저로 하면 실제 내 표정은 미동하나 없는 정색일지라도 그걸 모니터 밖에 숨기고 문자로써 웃을 수 있는데, 아저씨들은 왜인지 현실에서 직접 눈을 맞추며 농담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순간 어쩔 수 없이 로봇 같은 웃음을 지으려다 보면 뺨에 경련이 일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나도 웃음의 역치가 낮아서 쉽게 꺄르륵 꺄르륵 재미있어 할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런 로보트에게 아저씨들은 왜 자꾸 농담을 건네며 다가오는지 이해 불가다. 그런 냉대를 감수하면서도.


사회생활이란 참 녹록지 않다. 사교 생활도 마찬가지다. 남의 집 아기나 애완동물이 너무 귀엽다며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해맑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겁부터 덜컥 난다. 날씨나 연예인, 밥을 뭘 먹었는지, 어느 카페 디저트가 맛있는지 같은 종류의 이야기들을 대체 왜 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따분하다. 회사에서는 일 이야기만 많이 하고 싶다. 우러나지 않는 리액션을 안 해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