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의 추억

각목을 들고 찾아온 손님

by Ubermensch







우리 회사 수사관들은 사실 입사를 하자마자 본격적인 수사에 투입되는 경우는 드물고, 근 10년 간은 사무국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게 된다. 벌과금 집행, 신병 유치나 검거 활동처럼 유사수사 업무도 있지만 인사, 행사, 서무, 재무 업무 등 검찰청 또한 거대 회사이기 때문에 일반 회사에 필수적인 업무를 수사관들이 담당한다.


나도 법무부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황금엘리베이터 앞에서 고위급 위원들을 안내하는 엘리베이터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회 요구자료를 제작하거나, 정부법무공단을 관리감독하거나, 검찰콜센터 상담사들을 관리하는 업무도 하고. 대내외적으로 수사관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수십 년간 수사부서를 기피해 아예 수사와 무관한 길을 걷는 수사관도 의외로 많다.


나는 수사를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 본연의 업무를 몹시 사랑한다. 지금은 조직이 존폐의 위기에 있긴 하지만. 이번 인사이동으로 입사 10년 차에 들어서야 드디어 수사다운 수사를 하는 곳에 속하게 되었으므로 요즘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아직은 경험을 쌓고 많이 배워야 해서 감히 수사에 대해 논하기엔 이른 처지이므로, 오늘은 내가 그간 거쳐온 수많은 업무 중 가장 적성에 잘 맞고 잘 해낸 추징하던 시절을 회고해 보기로 한다.


추징은 입사 3년 차 수사관이 맡기엔 난이도가 꽤 있는 업무였다. 강제집행이란, 통상 검찰 업무가 주로 형사법에 한정되는 것에 비해, 민사 영역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갖춰야 한다. 물론 제대로 하려면 말이다. 어쨌든 나는 추징 담당이 되었고 내 밑에 후배 하나도 붙었다. 나는 억대 고액, 후배는 소액 추징금을 담당했다.


추징금은 벌금과 달리 납부를 하지 않을 경우 지명수배나 유치집행이 불가하기 때문에, 오로지 재산을 추적해 그에 대한 압류와 추심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재산을 차명으로 빼돌리거나 아예 없는 사람들의 경우, 유치장에 끌려갈 일이 없으므로 수년간 미납한 채로 버티고, 그 특성상 전국적으로 악성 미제가 엄청 많다. 각 청은 집행 실적을 놓고 경쟁을 하기도 하고, 아예 손을 놓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추징 담당자의 성향에 따라 방치하고 포기한 채로 놀 수도 있고, 민사집행까지 공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강제집행을 수단을 동원해서 악착같이 집행을 할 수도 있는 성격의 업무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어느 날 민원실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추징금 미납자가 각목인지 방망이인지를 들고 집행과로 가고 있다고. 사건 조회를 해보니 추징금이 1억 미만이어서, 내 담당 손님이 아니었다. 옆자리를 슬쩍 보니 후배는 화장실에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얼마 뒤 그 각목인지 방망이인지를 든 아저씨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나는 마중을 나가며 고민을 했다.


안녕하세요,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라고 할까 하다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삐약이 후배가 저 아저씨를 상대하려면 얼마나 버거울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내가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나도 입사 3년 차 20대 삐약이인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조금 더 큰 삐약이니까. 선배답게 굴기로 했다. 손님이 들고 온 각목인지 방망이인지는 애써 안 보이는 척하면서.


이어폰 한쪽을 건네며 이걸 한번 들어보라느니, 자기가 조만간 국회의원에 출마할 거라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는데. 쭉 파악을 해본바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된 것이 생활에 지장을 주니 해결해달라는게 방문의 목적이었다. 추징금을 납부하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돈이 없단다. 이야기를 쭉 들어주고선, 누구누구 씨 죄송하지만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는 검찰이 아닌 법원에서 하는 거예요. 법원에서 판사가 한걸 저희가 무슨 수로 해제할 수 있겠나요. 사정은 안타깝지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했다. 물론 그 신청과 해제 요청은 우리가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으므로 안 했다.


손님은 어차피 안될걸 알고 온 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잘 들어줘서 기분이 풀린 건진 모르겠지만 알겠다며 유쾌하게 돌아갔다. 의외로 우리 회사에 씩씩거리며 찾아와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은, 본질적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이야기만 잘 들어주면 진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곳이 많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손님은 어린 딸이 죽은 이후 양극성 정동장애가 생겨 힘든 삶을 살고 있고, 열심히 일해서 조만간 납부를 할 테니 주렁주렁 걸린 압류를 좀 풀어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때는 사회의 때가 덜 묻고 마음이 여릴 때여서, 분납 조건으로 해서 전자압류 정도는 좀 풀어줘 볼까 했는데, 원표를 보니 죄명이 성매매알선이었다. 페이지를 더 상세히 넘겨보니 그 딸은 10년도 더 전에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완납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해제해주지 않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이후 나는 손님들의 딱한 사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로 마음을 차갑고 단단하게 먹었다. 미납자와 관계된 모든 정보를 탈탈 조회해서, 전자(계좌, 카드 등) 압류는 당연하고, 부동산, 차량, 유체동산 압류, 공매, 경매, 출국금지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배우자에게 명의를 넘긴 사람은 사해행위 판례를 찾아 아내 명의로 넘긴 사업장에 집행관을 보냈다.


전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추징금 미납자 명단을 전수 조사해서, 설과 추석을 앞두고 감옥에서 복역중인 가족이 안쓰러워 영치금을 두둑히 넣을 것을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명절이니까 호의를 베풀어 만원은 남겨주고 나머지는 전부 빼앗아 국고로 수납했다. 그때 교도소에서 편지를 참 많이 받았다. 너무 가혹하다. 틀니를 맞출 비용이었는데 밥을 못 먹고 있다. 등등.


어쨌거나 그 가혹한 집행 실적으로 나는 특별공적직원에 선정됐고, 상위 1%의 공무원만 받는 SS등급의 성과급을 받았으며, 빠른 승진을 했다. 법원에 가서 추징금 미납자가 소유한 부동산 경매대금에 채권이 있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호명되는 순간에 나는 채권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네, 하고 대답하는 순간 사람들이 동시에 쳐다봐서 얼굴은 빨개졌지만, 스스로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서 기분좋은 벅찬 감정이 번졌다.


사람들은 공무원에 대한 인식으로 흔히 동사무소 사례를 들며 불친절하고 무기력하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명감을 품고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도 분명 많다. 우리가 일하며 수천번 이상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으로 시작하는 폭언을 듣지만, 입사 10년 차 계장인 내 월급의 앞자리는 놀랍게도 2로 시작한다. 모든 수당을 다 합쳐야 3이 될까 말까 한다. 그것도 공안직이라 다른 직렬의 공무원보다 조금 더 높게 받는 게 그 정도다.


그러므로, 공무원을 조금만 더 존중해서 대해주고, 추징당할 죄를 범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keyword
Ubermensch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171
이전 04화주사(酒邪)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