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나는 책임이라는 개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 원대한 포부가 있던 나는 노란색 포스트잇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명문을 적어 책상 위에 붙여두고, 힘들 때마다 한 번씩 고개를 들어 그 문장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사상가들 역시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고전적 관점에서는 자유와 책임을 유기적으로 엮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이며, 인간이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선택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보았다. 칸트는 도덕적 자율성이란 자기 입법이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도덕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책임을 개인과 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본다. 가령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논의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적 명령에 비판적 사고 없이 순응함으로써 개인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곧 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의, 인간은 자유가 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권위에 복종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분석과 맞닿아 있다.
최근 망조가 깃든 우리 회사에는 압수 현금의 관봉권 문제로 청문회다 뭐다 시끌벅적하다. 나도 9년 전 압수와 관련이 있는 영치 업무를 한 적이 있다. 수리된 압수물을 인계받아 영치하는 업무였다. 그런데 그 무수한 압수물을 다루어봤음에도 관봉권이라는 명칭은 이번 이슈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만큼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다. 시각에 따라 음모론적으로 볼 수도 있고, 특정인의 단순한 업무적 과오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임의 문제가 가장 크게 와닿았다.
스물아홉 때, 5일간의 부친상을 치르고 돌아온 바로 다음날 통합사무감사가 있었다. 당시 나는 전통적으로 내가 있던 집행과의 집중 감사 대상 업무 양대 산맥인 소멸업무와 추징업무. 그러니까 1년간의 강제집행 업무로 감사를 받게 되었다. 강제집행 업무는 아무것도 안 하려면 마냥 두고 놀 수도 있고, 이것저것 민법까지 파고들어 하려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성격의 업무다. 나는 끝도 없이 파고들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기 때문에, 감사를 받을 자료가 아주 풍부했다.
역설적이게도 일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안 하면 지적당할 게 없고, 일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면 그만큼 관리하고 챙길 게 많기 때문에 누락이나 실수의 확률이 커진다. 당시 나는 입사 3년 차 삐약이긴 했지만, 내게는 부사수라고 볼 수 있는 더 아기 삐약이 후배 하나가 달려 있었고, 내가 고액추징 업무로 넘어가면서 기존에 하던 소멸 업무를 넘겨받게 된 다른 삐약이 후배도 있었다. 둘 다 그 어려운 강제집행 업무를 나에게 배웠고, 내겐 아주 예쁘고 소중한 후배들이었다.
그 후배들은 적당히 편하게 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선배를 잘못 만나 격무에 시달렸을 수 있다. 나는 내 소관이 아닌 업무임에도 후배들의 업무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나름 도리를 다했다. 술과 밥과 선물도 많이 사줬다. 어쨌든 1주일간의 감사기간 동안 집행과 다른 단순 업무 담당자들이 한 번이나 불려 갈까 말까 하는 중, 우리 셋은 매일 한 번씩 불려 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도 불려 갔다.
괜히 일을 크게 많이 벌였나, 적당히 좀 할걸 후회도 들었다. 제출할 자료도 많고 소명할 것도 많았다. 소멸시효 3개월 전, 사실조회를 해서 차량에 압류를 걸어 시효중단을 해 두었는데, 그 사이 압류된 차량이 말소되는 바람에 시효중단의 효력이 상실된 일이 생긴 거다. 관공서에서 그 사실을 통지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다행히 그 통지가 없었기 때문에 중한 문책은 면할 수 있었다.
워낙 방대한 양의 강제집행을 했던 터라 그중 비슷한 류의 몇 가지 문제 사례가 발견되었고, 처음 감사장에 가서 이런저런 추궁을 받던 후배들은 울먹거렸다. 나도 갓 상을 치르고 와서 눈물이 약간 날 것 같았지만, 나는 그중 가장 선배고 언니고 그나마 큰 삐약이였기 때문에 눈물을 꾹 참고 감사관님께 말했다. 후배들은 업무를 다 저에게 배웠습니다. 제가 선임입니다. 제 지시대로 한 거예요. 그러니 이번 감사 대상 업무에 지적사항이 있다면, 후배들은 잘못이 없으니 제가 받겠습니다. 저만 지적해 주십시오, 했다.
결국 우리 셋 모두 아무런 주의도 경고도 지적도 받지 않고 무사히 1년 업무에 대한 감사를 마쳤다. 열심히 해왔던 게 보인다고 도리어 칭찬까지 받았다. 전통적으로 집행과 주요 감사 대상은 우리의 업무였지만, 그해 감사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지적을 받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다. 잘하고 열심히 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역량 이상의 일을 벌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수의 가능성도 커진다. 외부 상황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는 환경에 처할 때도 있다. 실수와 잘못을 한 건 전혀 부끄러울게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 대해 인정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무엇보다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본다. 특히 책임이 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얼핏 많은 사람이 따르는 듯 보이지만, 단순히 그 자리 자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존경에는 한계가 있다. 그 높은 지위만큼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휘하의 사람들이 그를 진정으로 믿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