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하게 생각하고 감각하는 사람의 비극
MBTI가 유행하던 몇 년 전, 나는 해맑은 강아지 같은 성격이라는 ENFP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나를 십 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나를 내 가족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다는 고소한 정수리와,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취했거나 모든 면을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가 절대 ENFP는 아닌 것 같으니 다시 검사해 보라고 권유했다. 본인이 지향하는 바 말고, 있는 사실 그대로 응답을 하랬다. 조금 기분이 나빠서 내가 ENFP라고 한 1년간 더 믿은 채로 살다가, 어느 날 다시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재검사를 해보았다. 그때부터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이라는 INTP가 나왔고, 내 주변 모두는 그제야 그 결과가 맞는 것 같다며 인정해 주었다.
INTP는, 내향-직관-사고-인식적 정보처리와 의사결정 경향성을 지닌 성격 유형이다. 가장 희귀한 유형이라고 한다. 가장 내향적이고, 가장 이성적이며,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엉뚱하다고 한다. 씹팁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성격장애로 보는 사람도 있다. 소시오패스라는 말도 종종 듣고. 그나마 좋은 표현으로는 따뜻한 로봇이 있다. INTP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자기 머릿속 세상에 거주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HSP(고도 민감성 개인 : 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은 Elaine Aron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용어로, HSP는 전문적인 의학 용어나 장애 여부를 나타내는 단어는 아니고, 심리성격학에서 쓰이는 특정한 기질 타입을 의미하며, 심리학계에서 개인차에 관련된 성격변인으로 취급되고, 내향적인 성격과 큰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HSP는 외부의 감각 자극을 수용하는 민감성이 현저하게 높은 개인을 의미한다. 이들은 감각에 대한 역치가 남들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조금만 웅성거리는 곳에서도 쉽게 시끄러움을 느끼고, 촉각 역시 예민하기 때문에 더위나 추위에도 민감하다. 통념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바로 컴플레인을 하고, 자신의 예민함을 계속 드러내면서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을 생각하지만 HSP는 오히려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전이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언짢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면 그러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느껴야 하는 HSP의 특성상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기 때문이다. 위 기술 내용은 나무위키 HSP 검색 결과가 그 출처다.
혼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외부 세계의 자극을 너무 예민하게 감각해 버리는 탓에, 저 두 가지 성향을 한꺼번에 가진 내 뇌는 항상 과열된 상태다. 그래서 내 뇌파 사진이 그렇게 형형 색색으로 물들어 탈진한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나 보다. 약을 계속 복용 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내 뇌는 꼬꼬무식 생각을 멈추지 않고, 세상의 모든 자극을 과잉 감각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상식선의 기준에 어긋난 반응을 할 때가 자주 생기곤 한다.
가령, 점심에 선량한 옆자리 후배가 계장님 식사하셨습니까, 뭐 드셨어요? 라는 질문을 하기에. 나는, 그게 왜 궁금하세요?라는 질문으로 응답했다. 선량한 후배는 무안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주변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나는 후배에게 무안을 주기 위한 악의를 가진 게 전혀 아니었다. 후배가 내가 먹은 메뉴를 궁금해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서였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점심 메뉴를 알아서 본인의 저녁 메뉴에 참고하고 싶을 수도 있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나를 마주쳐서 내가 어느 식당으로 갔는지 구체적인 장소가 궁금할 수도 있을 테니까.
성폭력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진술을 듣다 보면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칼을 들이밀고 폭력을 행사하는 전 연인에게 하루 종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딸의 학교에 찾아가 엄마가 걸레라고 말하겠다며 협박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동행했다는 피해자의 담담한 진술을 듣고 있자니, 그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이 내 온몸에 퍼져 얼굴에 피가 몰리고 몸이 경직됐다. 얼마나 무서우셨어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같은 따뜻한 위로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만 싶었고, 앞으로 내가 전담할 수사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절대 성범죄나 아동학대 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지금은 경제범죄를 전담하는 부서에 있다.
이렇게 너무 과하게 생각하거나, 너무 과하게 몰입해 버리면 일상생활에 무리가 크다.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의 반응과 대처가 잘 안 된다. INTP적 성향은 생각을 과도하게 하다 보니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에서 자꾸 어긋나고 튀어버리고, HSP적 성향은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체화해 버리는 까닭에 고통을 받아 역설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피하게 되고, 결국 양쪽 성향 모두 나를 사회에서 한 발짝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이런 성향이 싫어서 고치고 싶거나 특별히 사회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기질이라는 건 타고나는 것이므로 노력을 한다고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안다. 과한 사고와 예민함을 줄이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큰 변화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병적으로 과도한 사고와 감각이, 수사관이라는 직업에서나 창작의 면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천재적인 사상가나 예술가 중 정신질환자가 많은 건 우연이 아닐 거다. 비록 스스로는 괴롭고,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볼지언정, 따분한 세상에 그 괴짜들이 어떤 특별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면, 그로써 그들이 세상을 다녀간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