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취글

팬미팅 후기

연예인이 된 줄

by Ubermensch





간밤엔 취글을 작성했다. 술을 깨고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웠다.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나한테 매혹당했니 어쩌니 써 내려간 내 뻔뻔함에 감탄했고 많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주제는 제비로 뽑은 사람을 주제로 쓰는 글이었는데, 취함의 정도에 비례하여 나르시시즘이 더욱 짙어지는 경향이 있는 나는 그를 주제로 시작한 듯했으나 결국 내 이야기로 이어가 끝내는 마무리가 어처구니없었다. 면밀히 따지고 보면 소제목부터 내 얘기다. 맨 정신에 민망함이 치고 올라왔으나 취글 프로젝트 의미상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진 않고 남겨두기로 했다. 아침에 스스로의 뻔뻔함에 당혹해 놓고 이번 후기 또한 뻔뻔하게 적을 수 있는 까닭은 나름대로 있다. 그분들이 내 팬임을 자처해 주셨고 실제 나를 보면서 연예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연예인을 본 소감이 어떤가요, 연예인은 역시 연예인이다. 등등의 말들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나는 제천 하늘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다 왔다.


정작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인 나는 늦잠을 자느라 30분 정도 지각을 했다. 준비물도 몇 개 빼놓고 갔다. 몇몇 작가님은 몇 시간 일찍 도착해 먼 거리에서 장도 봐오고 무생채도 담그고 흑백요리사를 촬영하고 있는 줄 알았다. 심지어 나는 주인공 연예인인데 화장품도 놓고 가서 팬이 안티로 돌아설 뻔했다. 사실 이미 그랬을지도 모른다. 도착을 하자마자 이작가 저작가님들이 위경련 약을 준비해 왔다고 하셨다. 위에 좋다는 붕어즙을 주문제작해다 주신 작가님도 계셨다. 내가 아프다고 한 것도 아닌데 이전 글을 보고 혹시나 아플 까봐 그렇게 챙겨 오셨던 거다. 나만 빼고 천사들이 속한 세상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다들 본투비 기버였다. 나만 테이커고.


어쩌다 내가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돼서, 이렇게 엄청나게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았을까. 너무 신기하고 축복을 받은 것 같아서 현실감이 잘 안든다. 항상 내가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는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천사의 환생인가 싶은 듯한 그들은 순수하고 맑은 얼굴들로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로 온 것임을 인정해 주셨다. 특별할 것 없는 내 생각과 경험을 이리저리 써제낀 글에 사람들이 이렇게 진심을 내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모습이 분명히 있다. 각자 고유색을 띄는, 보편적이지 않은 세계가 확실히 있다. 누구는 따뜻한 와인색, 누구는 맑은 초록색, 누구는 차분한 남색, 누구는 오는 길에 많이 보인 단풍색, 은행나뭇잎 색. 그리고 다들 굉장히 똑똑해서 대화가 즐겁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전제로 한다. 행간의 의미를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표현을 고르고, 문장을 정렬하고, 배치하고, 설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삶과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이 된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는 지점을 느껴 해석해 주고, 예쁜 표현으로 마음을 보듬어 주고, 서로의 다쳐 아픈 마음을 재정렬하고, 재배치하고, 단단히 설계해 준다. 글을 쓰길 정말 잘했다. 이런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각자 사는 곳으로 흩어져 가는 차 안은, 사람들이 나누어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히 찼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마음에 가득 차 울렁거렸다. 전에도 든 생각이지만 감동이라는 것은 분명 좋은 감정에 속하는 것일 텐데, 왜 저릿저릿한 통증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좋은 사람들이 내게 점점 모여드는 걸 보면, 열네 살 적 꿈인 두 번째 여자 대통령도 혹시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화면발이 잘 안 받기 때문에 그건 그냥 되지 말기로 한다.


keyword
Ubermensch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