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만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장에 대하여
차가움이 깃든 새벽 3시, 스탠드 불빛마저 흔들렸다. 한 문장을 다듬느라 흐른 두 시간.
“이제 됐다.”
A는 저장 버튼을 누르고 몸을 기대었다.
눈앞에는 완성된 원고, 그리고 곧 인쇄될 책의 표지.
그 표지 위엔 그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기쁨보다 공허를 먼저 느꼈다.
그날 밤, A는 이상한 꿈을 꾼다.
출처가 지워진 도서관,
문장이 일렁이는 희미한 책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문장을 필사하며 읽는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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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성공한 작가였다.
베스트셀러 작가, 수상 작가, 강연과 방송까지 섭렵한 이름.
무엇보다 그는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는 손”으로 불릴 만큼, 탁월한 필력을 지녔다.
그에게 글은 감정의 기록이 아닌, 구조화된 예술이었다.
10년간 수십 번의 퇴고 끝에 남긴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조각상처럼 정제되어 있었다.
그는 그만큼 자신의 작품에 강한 소유감을 느꼈다.
완벽함에 목마르고, 과하게 민감한 그였기에.
“누군가의 것을 베끼는 건 범죄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만의 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세요”
- A, 북 토크 강연 中
그래서 누군가 비슷한 표현을 썼다고 느끼면, 그는 ‘표절’이라고 여겼다.
SNS에 타 작가들을 향한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고, 자신의 스타일을 흉내 내는 이를 향해 날을 세웠다.
“표현이 닮았다고?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이러한 문장은 내 것이죠.”
- A, 작가와의 인터뷰 中
그의 언어는 예민함을 넘어선,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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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작가의 이름이 눈에 밟혔다.
B.
익명의 SNS 작가였고, 글은 빠르게 퍼졌다.
”내 ‘선’에 맞춰 삶을 이어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
- B의 글 中
처음 B의 글을 접했을 때, A는 위화감을 느꼈다.
문장의 리듬, 감정의 결, 주제의 색까지…
모든 게 낯설지 않았다.
그건 ‘따라 쓴’ 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B의 글엔 뭔가 있었다.
거칠고 서툴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솔한 무언가.
독자들은 말했다.
“이 문장 정말 제 이야기 같았어요.”
“제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어요.”
“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게시글이었어요.”
A는 혼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내 감성, 내 문장을 왜 저 사람이 대신 쓰는 거지…?’
그는 결국 B를 표절이라 지적했고, 풀리지 않은 분에 저작권 침해 법적 절차까지 밟는다.
그러나 주소도, 신상도 알려지지 않은 B.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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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A는 하나의 편지를 받는다.
보낸 사람은… A 자신, 수신인도 A 자신.
편지를 펼치는 순간, 심장이 먹먹하게 내려앉았다.
B에게 보낸 내용증명이 되돌아온 것이다.
”저작권 침해 행위를 확인하여 본 통지를 드립니다.“
매니저에게 연락하려던 찰나,
그는 과거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왔다.
그 기시감.
B의 문장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
그 문장은, 10년 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자신의 글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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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10년 전 과거의 A였다.
SNS에 첫 글을 올리던 날,
누군가의 댓글 하나에 밤새도록 웃고 울던 시절.
형편없는 문장을 수십 번 지웠다가 되살리며
가장 ‘자기 다운’ 표현을 찾아 헤매던 그 시간들.
그때의 감정과 단어들,
그 모든 것이 B라는 익명의 얼굴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B는 문장력이 서툴렀기에, 동경하던 선배 작가의 감정선을 모방해 글을 적고 있었다. 그러나 B의 글이 좋은 반응을 얻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야, 내 문장을 어떻게 거의 베껴버린 후 글을 올리냐? 난 이거 그냥은 못 넘어가. 소장이나 기다려. 알겠어!?‘
결국 B는 가장 존경하던 선배로부터 저작권 침해 소장을 받게 되었고, 이는 그에겐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때부터였을까?
B의 존재를 기억에서 지워버린 A는,
더욱더 ’자신만의 것‘을 찾고자 몸부림쳤다.
끝없이 쓰고 지우고 개서하고 퇴고하며,
결국 쟁취해 낸 개성적인 문장을 무기로
타 작가들에게 날 선 창을 겨누고 있었다.
A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문장’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의 문장이건, 진심으로 쓰였다면
그것은 마음의 언어로서 공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창조는 결국 모방에서 시작하기에, 조금 더 너그러이 영감을 허용하고, 동시에 원작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어떨까?‘
잊힌 B와의 재회로,
A는 스스로를 성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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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펜을 놓았다.
순수한 자신마저 지워버린 그는, 더 이상 작가로서 살아갈 수 없었다.
그의 신작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조용히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저작권은 창이 아니라 방패여야 한다.
닮음을 위협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진심을 보호하는 울타리여야 한다.
그 이후, 사람들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글을 쓰던 순수한 소년 B처럼,
서로의 글에 영감을 얻고, 따라 하는 과정을 거쳐
개성이 강한 각자만의 작품이 완성되어 갔다.
진심이 담긴 표현. 이를 보호하는 역할이,
A의 은퇴 후 오늘날의 저작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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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새로운 작가 P가 나타났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 감성,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 익숙함 덕분에, 난 다시 쓸 수 있었어.”
깃발은 단 한 사람이 꽂는 것이 아니다.
모두의 발자국 위에, 이야기가 쌓이는 것이다.
그 깃발엔 이름이 없다.
다만, 문장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을 누가 처음 꽂았는지는—
그를 지키는 방패만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장을 베지 않기 위해 저작권을 말한다.
살아 있는 언어를 지키기 위해, 이름 없는 깃발을 보호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