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전시 6개 본 후기

국립민속박물관/MMCA/일민미술관

by 위다혜

리프레시를 위한 리프레시 데이! 이번 휴가에는 뭘 할까 하다가 지난번에 혼자서 mmca 올해의 작가상 전시 보러 간 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또 전시를 보기로 했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이것저것 수집해보고 나니 모두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몰려있어서, 각 잡고 전시만 보기로 결정했다. 마침 날씨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여름 날씨여서 정말 행복했다.

최근에 <휴식 찾기의 기쁨>이라는 책을 읽었다. 폴인에 발행된 휴식과 번아웃 관련 아티클로 알게 된 유보라 작가의 책인데, 아티클 못지않게 책도 가볍지만 괜찮았다. 내 필사 리추얼에 들어오는 리추얼 메이트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나에겐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게 휴식이 아니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바깥을 탐험하는 게 휴식이라는 점이었다.

작년에 경기도로 이사 올 때 친구가 "경기도로 가면 서울로 잘 안 나오게 돼.. 너 자주 가는 공연이나 전시도 안 가게 될 수 있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을 땐 '아닌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일은 현실로 일어났다. 경기도로 오고 나서, 어딜 가든 지도를 찍으면 늘 1시간이 넘는 소요시간이 찍히고, 두 번 환승하는 것은 기본인 환경에 놓이고 나자 한 동안은 어딜 많이 안 갔던 것 같다. 물론 작년이 무척 바쁜 한 해였던 것도 한 몫했지만. 그렇게 어딜 굳이 안 가는 1년을 보내고 나니 나 혼자 길거리를 걷고, 전시와 공연을 보고, 카페에 앉아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나에게 정말 큰 휴식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제대로 된 휴식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으니 우울할 수밖에. 올해는 나만의 리프레시를 더 자주 가지자고 또다시 다짐 한 날이다!


~~~~~~오늘의 코스~~~~~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도 기념 :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 전시 - 국립민속박물관 <7080 추억의 거리> - 카페 <타르틴> -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 일민미술관 <기둥 서점 프로젝트 : 존 버거의 책들>


(1)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도 기념 :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 전시

기념품!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전시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제를 풀어낸 게 기발하다고 느꼈던 전시. 포스터도 너무 컨셉츄얼하게 잘 뽑았다. 이 전시에서 '기념품'이라는 것은 한 팬덤에서 기획하여 제작하는 '굿즈'를 말하기도 하고, 여행지나 관광지에서 사는 '수베니어'를 말하기도 한다고 느꼈다. 이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무튼 기념품을 주제로 한 전시는 넘 흥미롭고 재밌었다.

"기념은 소중한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기념품은 그 마음을 담은 작은 증거입니다."

여행지/관광지에서의 즐거운 마음이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간직하려는 마음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팬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든, 특정 활동(영화보기/마라톤 등)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든, 기념품이라는 물건이 만들어지는 시작 지점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이런 마음이 나에게 특히 좋게 느껴졌던 건, 내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굿즈를 기획하는 사람이라서겠지. 이 전시를 보면서, 어느 순간 굿즈가 정확히 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지금 '굿즈 = 이미 만들어진 상품이 아닌 우리가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상품'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출판계에서 굿즈를 판매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건,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책을 어디서 살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여기서 사면 사은품을 드려요!"라는 포인트가 차별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은품의 사전적 정의는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물품". 그래서 머그컵을 주고, 접시를 주고, 가방을 줬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굿즈는 사은품인가? 기념품인가? 갑자기 굿즈는 무엇인가?가 궁금해져서, 굿즈를 우리말로 뭐라고 하는지 검색해 봤다.

"아이돌,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을 소재로 제작된 물건들을 ‘굿즈(goods)’라 합니다. ‘굿즈’는 ‘팬 상품’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팬 상품’이라는 말속에는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념상품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잘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굿즈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념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럼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독자는 기념품을 살까?

1.교보문고에서 책 사는 걸 기념한다. -> 나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니까,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고 읽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굿즈를 산다. 실물 굿즈를 통해 교보문고에서 책 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다!

2 특정 책을 사는 걸 기념한다. -> 나는 <첫 여름, 완주>책을 좋아하는 독자니까, 이 책의 팬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키링을 산다.


나는 마케터라 특정 책 사는 걸 기념하는 굿즈를 만들긴 어렵고, 교보문고에서 책 사는 걸 기념하는, 기쁘고 자랑스럽게 만드는 굿즈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냥 디자인이 독특하고 예뻐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 상품만 사고 교보문고는 잊히는 게 아니라, 교보문고에서의 경험 자체가 너무 좋아서, 소유하고 싶어서 사는 굿즈. 혹은 굿즈를 통해 교보문고를 더 경험하게 하는 굿즈. 브랜드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굿즈를!


1. 기념품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재밌었다. 거의 다 아는 얘기긴 했지만..!

2. 기념품의 종류 중 기념일을 기념하는 기념품도 있다. 년도마다 다른 기념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3,4. 요즘 힙한 꿈돌이ㅠㅠ 너무 귀여워~~! 옛것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5,6 옛날 옛적 야구 굿즈들.. OB 베어스 너무 귀엽고, "작전 잘 짜기로 소문이난 김성근 코치"ㅠㅠㅋㅋㅋ너무 웃기다.

7,8,9 아이돌 팬의 굿즈, 티켓, 응원가.

GOD와 더불어 샤이니의 굿즈도 전시되어 있었다. 소장님이 기증하신 응원봉이라는 게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ㅎㅎ 이 사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더니, 어떤 출판사 마케터분께서 샤이니는 내 현재고 미래인데 왜 박물관에 박제되어있냐며 화내신..ㅠㅠㅋㅋㅋ 벌써 이렇게 전시가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니, 참 신기했다!

10,11 옛날엔 수학여행 기념을 이렇게 했구나. 제주 여행 기념북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여행 기념북은 왠지 귀여워서 나도 만들어보고 싶어 짐. 여행은 이렇게!

12. 빠질 수 없는 기념 수건. 요즘은 기념 수건도 약간의 밈화가 되어서, 재밌는 굿즈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13. 재직하고 있는 직원들이 모은 굿즈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여태 모아 온 영화 티켓, 마라톤 메달, 트럼프 카드를 쭉 전시하고 이 굿즈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는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좋아하고 아끼는 모음으로 모아온 그들의 마음이 따뜻했다.

영화를 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굿즈로, 영화 티켓 모은 걸 전시한 부분. 언젠가 책을 읽은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굿즈들, 독서용품도 이렇게 진열되면 좋겠네...


(2)

국립민속박물관 <7080 추억의 거리>

전시 보고 나와서 가려는데, 저 멀리 레트로한 컨셉의 건물들이 보였다. 나는 레트로 컨셉 못 참는 사람이어서,, 냅다 가봤는데 디테일이 진짜 대박인 <7080 추억의 거리> 전시가 야외에서 열리고 있었다. 국민학교부터 현대문구, 근대화수퍼, 꾸러기만화, 다방, 이발관 등 7080 시대의 건물들이 하나의 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근대화 거리 이런 데 많이 가봤지만, 다들 좀 허술했는데 여긴 달랐다. 여긴 진짜다..!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옛 물건들이 그대로 놓여 있어서 정말 놀라웠다. 그 시대를 살아본 건 아니지만, 어릴 때 보던 풍경들이 언뜻 겹쳐 보여서 마음이 좋았다. 특히 문구점이랑 슈퍼는 내가 살던 시대와도 거의 유사해서 추억에 젖는 느낌!

자그마한 구석도 놓치지 않고 디테일을 잡은 점, 심지어 목욕탕 카운터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목욕탕 표?도 옛날 스타일 그대로 구현해 둬서 소름 돋았다. 안에 들어가서 보고 싶었는데 들어가진 못 해서 아쉬웠다.

꾸러기 만화방.. 읽고 제자리에 두라는 표시가 있는 걸 보면 들어갈 수 있는 듯하다. 아쉽다.

다방 DJ가 음악 틀어주는 뮤직 박스 그리고 옛날 커피컵들 ㅎㅎ


(3) 휴식.. @ 타르틴

평소에 타르틴 베이커리를 너무 좋아해서, 컬리에 입고 알림 걸어두고 사워도우를 떨어지지 않게 늘 사다 두는데 북촌점이 생겼다고 해서 기뻤다! 샌드위치는 역시 너무 맛있었지만, 내부가 협소하고 시끄러워서 야외 테이블로 나왔다. 이번 독서모임 책 <연루됨> 정말 정말..재밌고..커피도 맛있고..행복 휴식~


(4)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유명하다는 <론 뮤익> 전시보다 훨씬 좋았던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나는 도슨트 듣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이 날도 우연히 딱 도슨트 시간에 맞춰갈 수 있어서 럭키!

1. 취약한 몸에 대한 주제. 약하거나, 아프거나, 신체의 일부분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몸을 주제로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이 한 세계에서 어떻게 기대고, 기대하고, 돌보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주제의식을 다룬다는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늘 느끼고, 그래서 론 뮤익보다 더 좋은 전시라고 생각했다. (물론 론 뮤익도 대단하지만...)

2. 이러한 전시의 목적에 맞게,

(1) 전시의 서문을 일부러 쉬운 언어로 쓰고, 큰 글자로 적었다고 한다. 미술관의 전시 소개글은 나에게도 가끔 읽기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전시에 이해가 조금 느린 분들이 와도 쉽게 보실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라고 한다. 하단에 단어에 대한 정의도 쓰여있다.

(2) 시각 장애인이 전시를 더 보기 쉽게, 새로운 점자 블럭을 개발했다고 한다. '앞으로 가세요','정지하세요' 외에, '앞에 작품이 있어요','대화형 음성해설이 있어요'를 의미하는 노란색 점자 블럭을 개발해 전시장에 계속 이어지게 해 두었다. 만지면서 봐야 하는 것들은 최대한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배치, 대화형 음성해설도 특정 자리에 서면 잘 들리게끔 배치, 해설도 딱딱한 해설이 아니라 서로 가볍게 얘기하면서 작품에 대해 알아가는 쉬운 형식이라는 게 돋보였다.

(3)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를 넘어가는 다리를 기존 전시장과 다르게 분홍색으로 칠해두었다. "저기 다리 건너면 돼"라고 했을 때, 장애가 있는 분들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농인은 수어로 이야기할 때 주변을 살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다리를 건너면 돼"라고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이 작업은 농인을 위한 것이면서 더불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건 전시 공간 기획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였다..리처드 도허티의 <농인공간 : 문틀>)

1. 리처드 도허티의 <농인 공간 : 이중 원형>

제일 좋았던 작품. 이런 세계도 있구나 눈을 한 겹 뜨게 하는,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도슨트 듣기 전에 슥 훑어봤을 땐 뭐지..? 또 난해한 현대미술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미를 알고 나니 정말 감동적이었던 작품

(0) 이 작품은 농인 즉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1) 가운데 파란 원형 탁자

농인들은 수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기 때문에, 등 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소통할 수 없다. 그래서 농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항상 원처럼 둥글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시선을 옮기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시야를 한눈에 확보하기 위하여. 그래서 중앙에 원형으로 서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탁자를 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예전에 전주국제영화제 갔을 때였나, 농인분들 네 분 정도가 모여 앉아서 열심히 수어를 하시던 장면이 갑자기 기억났다. 그때는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시길래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으셨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수 이겠다.. 역시 아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2) 살짝 투명한 벽

위와 같은 이유로, 농인은 막힌 벽 너머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벽 뒤에서 사람이 등장하는 인기척 소리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벽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투명한 벽을 설치해 건너편에 누가 있는지 형태가 보이도록 했다.

(3) 거울

농인분들이 뒤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거울을 통해서 뒷사람을 보는 일! 이 공간에서는 평소 어렵던 일도 할 수 있게끔 거울이 설치되어있다.

(4) 긴 원통

수어로 대화를 하려면, 손이 자유로워야 한다. 가방이나 쇼핑백을 손에 주렁주렁 들고서는 소통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손에 든 소지품을 잠시 내려두고, 자유롭게 수어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한 좌대라고 한다.

(5) 볼드한 색감들

수어에는 색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팬톤의 컬러칩에 등장하는 것처럼 다양한 색의 이름이 수어로 만들어진 게 아니어서, 분홍색 / 파란색 / 초록색 / 빨강과 파랑 사이 이런 식으로의 표현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 수어로 표현하기 쉽게 끔, 수어로 표현 가능한 색으로 칠해진 거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지? 나도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더 깊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획, 그 배려를 통해 모든 사람이 더 편해지는 기획을.


"건축은 때로 갈등과 일상적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콘트리트로 된 소위 '평화'의 장벽과 '박스형 사무실'의 모습을 담은 두 장의 이미지는 현대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배타적이며 혼란스러운 곳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 우리는 농인의 신체 경험이 공간과 건축에 귀중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러한 발견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정상성, 장애, 인간 다양성의 개념에 도전하고 그것을 재정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여러 약물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래도 알록달록 생기 넘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신체를 표현한 작품. 기발하다!


3. 의지하거나 의지되거나

18명의 시니어 여성이 참여한 전시. 한 사람이 '자신이 기대고 싶은 사람' 혹은 '돌보아주고 싶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손을 마주 잡는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침묵의 시간을 가진다. 그 순간을 담아낸 사진 전시다. 손을 맞잡은 사진 옆에 "테이블에 놓인 사진 위에 손을 포개어 보세요"라고 적힌 게 좋았다. 나는 혼자 가서 누구의 손도 못 잡았지만..ㅠㅎㅎ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의지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4. 데이비드 기슨의 건축 모형

버클리라는 지역에 다양한 신체가 살아가는 창의적인 공간을 제시한 요즘 핫한 건축가라고 한다.

버클리 지역은 단독 주택제가 처음으로 도입된 지역인데, 그래서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는 턱 같은 게 많았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그 턱을 망치로 깨부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을 한 적이 있는 지역이라고. 멋지다. 데이비드 기슨은 기존의 건축물 구조를 바꿔 다양한 몸이 함께 살 수 있는 건축 구조를 제안한다.

5. 윤상은 - 어딘가의 발레

발레라는 장르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장르라고 한다. 윤상은 안무가 님은 그런 발레를 모두를 위한 발레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하는 발레, 조금도 틀리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위한 발레가 아닌 그냥 우리가 추고 싶은 발레를 위한 발레, 서로 돌보는 발레, 서로에게 기대고 연결되는 발레를 연구한다고 한다. 나도 잠깐 한 두달 발레를 배웠을 때 굉장히 틀에 박힌 보수적인 움직임이라는 느낌이 들었었고, 발레리나 중엔 혹독하게 체중 관리를 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고 들었다. 좀 더 유연하게 발레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좋겠다.


(5)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전시된 작품들의 눈빛이 깊고, 스토리가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무슨 일이 있는거지...?'라는 상상력을 자극하게 했던 전시였다. '작은 건 귀엽고, 큰 건 권위 있다.'라는 통념을 비틀면서 크기를 조절한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얼굴, 엄청나게 작은 몸 등 스케일의 변화에서 오는 변화도 재밌었다. 디테일이 진짜 신기했다..어떻게 만든거지..?


(6)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 : 하이라이트>

어느덧 미술관 폐관시간이 되어서 1층밖에 못 본 전시 ㅠㅠㅎㅎ 나는 동시대의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1960~80년대 현대미술을 다룬 1층은 조금 어렵긴 했다. 지하에는 90년대 ~ 2010년대 미술이라는데 다음에 지하를 가봐야지!

김환기, 이응노 등 거장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옆 쪽에 타인의 감상을 볼 수 있는 팜플렛이 놓여있었는데 그걸 같이 보니 더 좋았다. 김환기의 <산울림> 그림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작품들을 떠올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함께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대니 구, 월하보이, 류성희 감독, 모모스, 고선경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취향도 비슷해서 더 행복 -!


(6) 이동

교보문고 한 번 들렀다가,, 여름 글간판도 보고,, 초여름의 산책 ~,,


(7) 일민 미술관 <존 버거의 책들>

사실 이때쯤 되니까 다리가 너무 아파서...^_ㅠ 일민미술관 가지 말까,, 왠지 별거 없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려고 했지만, 뭔가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는 진열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으로 갔다. 또 초여름의 공기를 느끼며 걸으니까 다리가 안 아파졌다.

그러나..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 책 진열 + 추천사 책갈피 + 추천사 팜플렛 정도의 전시였다. 그래도, 맨날 존버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도 안 읽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는 데에 의의를.. <A가 X에게>를 사둔지 어언 3년 째.. 올해는 꼭 읽겠어요..


전시를 보러 다니다 보면, 예술가들이 던지는 새로운 문제의식들이나 내가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이 정말 크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될까 봐 늘 걱정하는 나에게, 세계를 조금이나마 확장해 주는 계기가 되어주는 시간들. 이렇게 다른 세계들을 접하고, 평소와 다른 생각들을 하다 보면 좀 더 유연하고 말랑해지는 것 같다.

휴 잘 놀았다~^^ 전시 6개는 봐야 놀았다고 할 수 있지^^ (물집 잡힌 발을 주무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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