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뉴욕 여행 D+9

by 위다혜

오늘 아침은 다시 다이너 - ! 이런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먹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갔다. (사실 평소에도 주말 아침은 늘 이렇게 먹긴 하지만..)

오늘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는 날!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가는 길로 안내가 되길래 공원을 지나는데 역시나 너무 좋았다. 복잡한 도심 속에 푸릇한 공원에 들어온 기분은 거의 해변가에 놀러온 것과 맞먹는 탁트임과 자유로움, 해방감과 여유를 준다. 공원을 걸어가고 있는데 또 재즈 버스킹을 발견했다. 기타와 콘트라베이스로 이루어진 조합의 듀오였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서 잠깐 멈춰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다양한 재즈 악기 조합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고, 공원에서 이렇게 좋은 음악을 우연히 들을 수 있다니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재즈 클럽에서 듣는 재즈보다 공원 재즈 버스킹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오늘의 서점 : 알베르틴

프랑스 전문 서점으로, 프랑스 대사관에서 지원하는 곳인듯했다. 천장에 그려진 천문학 그림이 넘 예뻤던 서점이다. 프랑스어를 몰라서 조금만 구경하다가 나왔다. 미국여행의 좋은 점은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라 언어를 이해하지 못 하는 때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보다 현저히 적다는 점이다.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건 아니어서 다 알아듣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글이 그림처럼 보이는 상태로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재밌는 것 같다.

드디어 도착! 권위있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the met 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게 굉장히 쿨해보인다..! 뮤지엄 앞에는 할랄 음식, 핫도그를 사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핫도그를 먹을까 하다가 할랄 가이즈를 못 먹은 게 아쉬워서, 아무 트럭에서나 lamb over rice를 시켜 먹었다. 할랄 음식은 왜이렇게 맛있는걸까..

제일 기대했던 이집트 관에 먼저 들어갔다. 이집트 유물들은 살면서 정말 볼 일이 없기도하고, 내가 늘 궁금해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언젠가 꼭 여행해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해서 구경해보고 싶었다. 특히,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를 꼭 보고 싶었다. 파피루스 위에 알 수 없는 글자로 적힌 글씨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벽에 그려진 벽화들도 신기했다.

제일 궁금했던 <덴두르 신전>. 어떻게 신전을 통째로 옮겨올 생각을 했을까..? 이집트 나일강 수몰 지역의 고대 유적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이 구조 작업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집트 정부가 이 신전을 미국에 기증했다고 한다. 가져와서 재조립을 한거라는데 너무 신기하다. 사실 신전 뿐만 아니라 이집트 유물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생길 때 이집트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이집트도 그런 발굴 지원과 공유에 관대해서 그 때 발굴된 모든 유물이 met에 와있다고 한다. met 이집트관은 이집트 밖에선 가장 큰 이집트 유물 컬렉션이라고 한다.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을 보면서, 유럽에 있을 때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 갔던 게 기억이 났다. 그 때는 여기있는거 다 훔쳐온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 met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합법적으로 발굴해서 검토받고 가져오거나 선물받은거라고 하니 왠지 마음이 편했다. (물론 아닌 것들도 있겠지만!)

중간 중간 전시 외에 'study gallery'라는 코너가 있었다. 전시까지 할 건 아니지만, 교육자 연구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설명 없이 전시품들을 모아둔 아카이브 같은 곳이라고 한다. 수집한 유물이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양이 너무너무너무 많아서 여기까지 봤는데 아직 1/10도 못 봤다는 사실에 약간 막막해진 기분이었다.. 미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이긴 한 것 같다.

이집트관 관람을 끝내고,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많다는 유러피안 페인팅 전시 쪽으로 가봤다.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다>, 렘브란트

금목걸이를 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 시를 상징하는 호메로스의 상을 바라보고 있다. 부와 지혜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

-<러브레터>,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꽃과 러브레터를 받고 기뻐하는 여성의 그림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꽃과 러브레터를 준비하는 여성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한다. 사랑을 받았을 때의 기쁨도 좋지만, 사랑을 줄 때의 기쁨도 만만치 않게 좋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요즘인데 사랑을 주는 설레임과 기대를 잘 표현한 그림 같다. 단 번에 시선을 빼앗겼던 그림! 얼마전 읽었던 사랑의 기술의 인용 문장이 생각난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꽃병과 멜론, 복숭아, 포도 정물화>

프랑스 사교계의 어떤 아마추어가 그린 정물화라는데 그 디테일이 너무 대단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올리브 나무>, 반 고흐

반고흐는 올리브 나무 그림을 여러개 그렸다고 한다. moma에서 본 올리브 나무가 더 좋긴했지만, 이 버전도 좋았다.

-<수련>, 모네

파리와 moma에서 본 수련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수련의 색감이 더 잘 드러나서 좋았다.

특히 다리 아래의 연꽃 그림은 이전에 본 <수련>과 다른 구도로 그려진 것이어서 좋았다. 보자마자 헉! 했던 작품

-<얼음판>, 모네

봄~여름의 푸르푸릇한 풍경만 그린 줄 알았는데 이런 겨울의 풍경도 그렸던 모네. 회색도 아닌 거의 흰색으로만 겨울의 풍경을 묘사한 게 인상적이다.

-모네의 아침 정원..?(제목 기억 안남)

아침의 빛을 담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배를 타고 나가 그렸다는 그림. 아침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다.

반 고흐의 그림들..

<자화상>

자화상은 풍경들과 다르게 질감이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라 더 담백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사이프러스 나무>

하늘의 색감과 레몬빛 구름, 노란 초승달까지 넘 좋았다. 색의 조화와 질감이 최고였던..!

<잔다르크..어쩌구 그림>과 <태풍..어쩌구 그림>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고 스토리가 그려지는 그림이어서 한참을 봤다. 메트로폴리탄에 유명한 그림작품들이 많지만, 오히려 안 유명한 그림들 중에 재밌는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배와 사과가 있는 정물화, 그리고 드가의 발레 그림들

처음엔 넘 좋았는데, 그림이 정말 많아도 너무 많아서 다 보지도 못 하고 나왔다. 여기 사는 사람이면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조금씩 볼텐데!

왠지 그리울 것 같은 노랑 파랑의 할랄 푸드트럭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넘 힘빠져서 스벅 펌킨 스파이스 라떼를 마셨다. 프라하에서 마셨을 땐 찐하고 스파이시한 계피향..?이 더 났던 것 같은데 뉴욕의 psl은 은은한 맛 정도밖에 안 난다. 그래도 맛있어 ~!

이번에도 센트럴 파크를 지나는 경로를 안내하길래 천천히 걸어갔다. 우연히 듣게 된 <정미조 - 7번 국도>, <소수빈 - 언젠가는 다시 마주치게 되는 것들> 노래가 너어어어어무 좋아서 하루종일 들으면서 다녔다. 센트럴 파크는 정말 평화롭다. 한강공원하면 치맥먹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 나는데.. 여기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햇빛을 쬐고,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하고, 책을 읽는 풍경이 넘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한강공원은 나한테는 친구들이랑 같이 각잡고 놀러가는 곳처럼 인식되고 혼자서 가 본 적은 딱 한 번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센트럴 파크처럼 혼자서도 그냥 쉬러 자주갈 수 있는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심의 소음이 차단된 자연 속에서 누리는 휴식 이렇게 좋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여행이다.

이 때 볕이 너무 좋아서 벤치에 앉아서 <궤도>를 읽고 있는데 보행기와 간호사에게 의지해 간신히 산책하시는 할머니가 나에게 와서 뭘 읽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궤도>라는 책인데 작년 부커상 수상작이고, 지구를 돌고 있는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에 대한 내용이라고 하니까 오 너무 좋다면서 읽고 우주에 가고 싶어졌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이 책 좋으니까 언젠가 읽어보셔라 했더니 자신도 가고 싶어질 것 같다며, 어쩌면 우리 둘이 갈 수도 있겠지? 라고 웃으며 떠나셨다. 사랑스러운 대화였다.

숙소에 들렀다가 야경보러가는 길에 본 달

탑 오브 더 락에 가서 야경을 봤다. 어느새 내일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말도 안돼!! 내일을 보내고, 친구 결혼식 참석만 하면 미국 일정이 모두 끝이 난다. 처음으로 2주 정도 긴 휴가를 떠나본 것이었는데 말도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맑은 것만 남는 것처럼, 오랜 시간 현실과 동 떨어져 나 자신을 가만히 두니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지금 당장 그만둬도 괜찮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잠깐 있다 사라질거야라고 여겼던 생각이 여행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도 하고, 보고싶을 것 같았던 사람은 역시나 내내 보고 싶었고, 일 생각에서는 벗어났지만 책 생각에서는 벗어나지지 않았다.

짐 정리를 조금 하면서 정리한 팜플렛들. 내일은 주변에 나눠줄 기념품들을 쇼핑하고, 여태 못 했던거 아쉬웠던 걸 하는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역시나 제일 하고 싶은 건 센트럴 파크에서 뒹굴거리며 책 읽기여서, <나의 뉴욕 수업>을 들고 공원에 갈 것 같다. 가져온 4권의 책 중 2권을 완독했다! 세인트 루이스 갈 때까지 <나의 뉴욕 수업>을 읽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14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뉴욕 3부작>을 완독하면 완벽할듯 -! 마지막 날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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