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회고 및 결산
매년 지겨울 정도로 하는 말이지만 시간은 정말 빠르다. 시작의 달인 1월과 2월은 나에게 가장 지루한 달이다. 앞으로 꽤 많이 남은 날들에 대한 막막함과 여유로움으로 인한 지루함이 피어오를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반면, 12월은 마무리의 달이다. 마케터에게 12월은 여러 프로모션이 몰리는 달이라 직업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장 바쁘다. 바쁜 업무를 이끌어나가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12월의 일들 중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1) 회고 2) 신년 계획 3) 내년의 나에게 편지 쓰기이다. 하루 날을 잡아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꼭 갖는다. 올해 있었던 일들과 좋아했던 것들, 싫어했던 것들, 성장한 부분들, 아쉬웠던 부분들, 내년에 대한 다짐을 쭉 적어본다. 이 작업에는 1년간 빼곡히 적어둔 일기장을 1월 1일 자부터 다시 보는 것, 매 월마다 간략히 월말결산을 해둔 노션 시트를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작년에는 기록에 소홀했더니 가장 마지막 달인 11~12월의 일들만 기억나고 1~10월의 사소했던 일들을 기억이 안 나는 사태가 벌어져 제대로 된 회고와 결산을 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면 반성과 성찰과 다짐을 하기 힘들다. 2023년에는 다행히 회고와 결산을 잘 진행할 수 있었고, 꼭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을 기록해 본다.
1. 말 조심 하자
말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한 해였다.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를 낳고,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고, 다른 누군가의 말을 훔치는 일들을 유난히 자주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상뿐만 아니라 콘텐츠 중에는 영화&책 <말없는 소녀>, 예능 <나는 솔로 16기> 등을 보며 말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해였다.
말은 조심히 해야 한다. 사람은 서로를 100프로 이해할 수 없기에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말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 사람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 누군가가 한 말을 의도와 다르게 부풀려서 전하는 일,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본인의 생각과 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 등 말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말은 말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평소에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습관보다는 나에 대한 일,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더불어, 말은 힘이 세기에 부정적인 말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 그 말은 남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정말 큰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말을 하는 순간에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그 이후에 내가 얻는 것은 없다. 나를 발전시키는 감정 보다는 더 우울해지고 절망하는 감정만이 남는다. 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하기까지 한다. 나를 수렁으로 끌고 가고, 남도 힘 빠지게 하고 싶지 않다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최소화하자고 올해 내내 의식적으로 다짐했고, 지금은 내 뇌가 부정 회로에서 긍정 회로 쪽으로 다행히 이동한 것 같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2. 일은 내 삶의 중요한 요소구나
팀 이동을 하면서 일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한 해였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어떤 프로세스로 일을 해나갈지, 어느 업무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치열하게 했던 해였다.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며 기초부터 쌓아 올렸다. 이전에 하던 직무와 비교하며 어떤 면이 나와 맞고 안 맞는지 계속해서 맞춰나가는 과정을 겪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크고 안정적이던 시기엔, 일 외의 다양한 삶의 요소들에 신경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자 삶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 내가 아직 적응을 못 한 건지, 이 일이 나랑 안 맞는 건지, 사람들과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하는지, 이 일이 영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지며 일 생각이 점점 내 삶 전체에 번져왔다.
나는 일을 사랑하면서 하고 싶은 사람이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 일에 투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이 나에게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니, 어떻게든 일에 재미를 붙이고 애정을 가져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하기 싫어도, 일단 하고 보자!
2번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일에 대한 고민이 커져갈 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도망치기, 불평하기, 안 하기가 아니라 '일단 그냥 하기'였다. 이야기 장수 출판사 이연실 대표님의 인터뷰에서 만난 문장이 올해 일을 대했던 나의 마음가짐을 대변해 준다.
회사도 실수를 하거든요. 조직도 실수를 해요. 조직도 막 커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가끔 사람을 밀어내기도 해요.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고요. 근데 그럴 때 그냥 내 일을 해나가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다 지나가요. 나를 지금 총애하거나 미워하는 상사도 다 지나가고요. 내가 진짜 죽고 못 사는 동료도 누구 하나 먼저 떠나갈 거예요. 그게 나의 일의 중심이 아니에요. 결국 나를 지켜주는 건 그냥 내가 해낸 일이에요. 그건 정말 어디 가지 않거든요. 그걸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고, 애정도 안 생기는 일이었지만 그냥 무작정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챙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내 능력치를 쌓는 것뿐이었기에. 그렇게 무작정 꾸역꾸역 하기 시작하니 내 손으로 쌓아 올린 것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애정이 생기니 더 잘하고 싶어 졌고,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 의욕이 없었던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에는 의욕이 꽤 넘치는 행복한 상태로 일하는 나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일을 통해 쌓은 능력과 스킬, 커리어는 덤으로 따라왔다. 그리고 그렇게 해낸 일들은 나를 지키고 증명해 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없던 애정도 생긴다는 것, 언젠가 알아줄 사람들은 나를 다 알아준다는 것을 배웠다.
4. 내 삶도 잘 챙기자
올 한 해는 일적인 측면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개인적인 삶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일에서 배운 것들이 정말 크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올해는 지난 해에 비해, 새로운 취미, 새로운 도전,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일과 나의 삶의 중요도를 적어도 50대 50으로 맞추기. 일에 매몰되어 내 삶을 잊지 않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본다. 일도 삶도 딱 반반씩 행복할 수 있는 2024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