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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Feb 02. 2024

더 씩씩하게 걸어가는 마음으로

책 <단 한 사람>, 최진영

2023년의 좋았던 것들에 대한 연말결산을 모두 마친 12월 마지막 주, 마지막 출근일. 조기 퇴근을 하고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들른 카페에서 펼친 책이 너무 좋아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읽었다. 최진영 작가님의 신작 <단 한 사람>이었다. 최진영 작가님의 책은 <해가 지는 곳으로> 한 권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독서 경험이 충분히 좋았기에 이번에도 기대하며 읽었다.

목화는 꿈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다 그중 단 한 사람의 목숨만을 구하는 일을 한다. 이 일은 할머니, 엄마, 딸에 거쳐 3대째 내려오는 일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각 세대마다 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 특히 딸인 '목화'의 관점이 작년 내가 내 일을 대하는 관점, 마음과도 유사했기에 목화에 굉장히 이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각자에게 사람을 살리는 일은 "임천자의 기적, 장미수의 악마, 신목화의 목표"로 인식된다. 천자에게 두려움이, 미수에게 사랑이 있었다면 목화에게는 질문이 있다.


임천자는 형제자매들이 죽을 때 본인은 살아남았기에, 자신이 단 한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 본인도 그렇게 살 아남은 단 한 사람이라고,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장미수는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임천자의 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죽는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아닌 내버려 두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신목화는 이 일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겉으로는 같은 일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각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또한, 각자가 받아들이는 경험은 오롯이 본인만이 알 수 있으므로 세상의 그 누구도 100% 타인의 경험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르겠어. 우리가 같은 것을 겪는지. 나는 내 것만 알 수 있으니까."
"신목화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운명에 내 몫이 있음을, 내 의지가 개입할 수 있음을,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증명하는 것"


이 외에도 이 소설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숲의 풍경들을 보여주며, 나무의 입장에 공감해서 읽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등장하는 다섯 명의 형제자매의 캐릭터성도 매력적이었다. 영화로 나오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캐릭터들에게서 공감 가는 부분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일 것 같다. 나는 특히 일화, 목화에게서 나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했다.

1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이기고 싶은 마음에 자기 자신을 깎아가며 공부하는 일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상처를 주는 일화. 자신의 일에 의문을 품고 힘들어하는 목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찾으려고 실천에 옮기는 목화,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이 일에 대한 증오를 자신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목화.


이 책에서 다루는 일이 삶과 죽음과 관련된 일이기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여러 죽음을 마주하며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큰 사건이 아니라 작고 흔한 순간들, 우리 옆에 늘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사회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번 하게 한다는 점도 좋았다. 산재, 노동현장의 죽음들, 사회적 참사 등의 이야기와 죽음 이후의 상황들을 곳곳 살펴본다.


좋았던 포인트들이 정말 많았고 위로도 많이 받은 책이었는데, 1월을 정신없게 보내게 되면서 이제와 쓰려니 그 감상이 흐릿해져 아쉽다. 그럼에도 목화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자신의 일에 대해 의미를 찾기 위해 행동하고 골몰하는 과정이 나에게 힘이 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목화의 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도 그렇다.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의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 일을 증오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며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나가는 자세를 이 책은 보여준다. 원래 책을 두 번 세 번 읽지는 않는데 벌써 이 책은 두 번이나 읽었다. 어떤 책을 읽는지를 보면 내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 처한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겨우내 이 책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내디뎌볼 수밖에. 앞으로도 살아가며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내 앞에 닥쳐왔을 때 꺼내볼, 안식처 같은 책이 생겨서 좋다.

"삶이 이렇다 저렇다 말을 들어도 자기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목화뿐이었다."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
"각자 자기 근심에서 빠져나갈 길도 같이 품고 있는데 당장 너무 힘들고 아프니까 나갈 길은 못 보고 지옥만 보는 거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서 굳은 것을 풀고 막힌 것을 뚫어서 근심의 기운을 나갈 길보다 약하게 만들어줘야만 한대. 그래야 자기 힘으로 그 길을 걸어간다는 거야. 내 동생의 역할은 나갈 길 쪽으로 그 사람의 몸을 조금 돌려주는 거고. 그게 무슨 말이겠어. 내 동생이 그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구한다는 뜻이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 암흑이든 미로든 스스로 통과하는 수밖에 없어.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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