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다섯 살 가을에 한글을 익혔다. 정윤의 도움 없이,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정윤은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리라 추측하고 담임교사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새싹반 교사는 오히려 흠칫 놀라며 집에서 배운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유치원에서는 이제 겨우 자음, 모음을 익히고 있고 그에 비해 봄의 진도가 빨라서 가정에서 따로 공부를 하겠거니 짐작했다 했다.
정윤은 봄이 자음이나 모음을 따라 쓰며 연습하는 장면조차 목격한 적이 없기에 봄에게 재차 물었다.
“한글을 어디에서 배운 거야? 어떻게 책을 읽게 된 거야?”
처음에 봄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냥, 이라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정윤이 한글을 깨칠 만큼 책을 많이 읽어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정윤은 봄이 글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글을 알고, 읽고, 깨우치고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릴까 염려했다. 정윤은 그림책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그 세부사항은 읽을 때마다 달라졌기에 그것으로 글을 배우기엔 충분하지 않았을 터였다.
정윤은 봄이 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기 원했고 알게 되더라도 세상을 알고 나서, 사는 법을 충분히 배우고 나서 마지막으로 읽고 쓰기를 바랐다. 쓰고 싶어서, 그러나 쓰는 법을 알지 못해서 오랫동안 글에 천착해 온 정윤으로서 크지 않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형벌이라면 자신이 이미 받을 만큼 받았노라 확신했다. 내 아이는 글에 관한 한 무식자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를 낳기 이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다.
정윤은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봄에게 물었다.
“마음이 가르쳐줬어. 읽고 쓰는 법을 마음이 가르쳐줬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정윤은 이건, 무의식적 강요로 인해 만들어진 대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로서는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고 정윤이 여러 번 물을 동안 대답을 만들 충분한 시간을 벌었으리라.
후로도 봄은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며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저렇게 읽다가 곧 체할 것이다, 생각이 들도록 읽고 또 읽어 천착을 넘어 집착이라 불릴만한 것으로 발전했다.
몇 년 뒤, 봄은 애정도 집착도 일시에 멈추었다.
마음이 읽으라는 명령을 거두어들인 듯 봄은 활자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곁에 두지 않았다. 쓰고 싶어 지기 전에 읽기를 멈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정윤은 조금 아쉬웠다.
그때부터였을까. 봄은 더 이상 아이이기를 그만두었다. 정윤과 완벽히 다른 독립적인 개체였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던 봄은 그렇게 정윤의 품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고 정윤만이 그 온기를 오래도록 간직했다.
정윤의 모든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봄이었지만 특히 정윤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실용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일갈했다. 고상한 척을 하며 시간을 탕진하는 중이라며 비난했다. 그렇다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봄도 아니었지만 정윤은 그런 지적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걸렸다. 정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수없이 들었던 문장들과 일치했다.
정윤은 궁금하고 의아했다. 왜, 어째서 유전자가 깊이 얽힌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 같은 사람들이 이토록 과격하게 공격해 오는 걸까.
“나는 이래……. 너는 그래. 그러니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될까. 뭘 더 잘해보려고 하지 말고 말이야.”
정윤이 어렵게 입을 열자 봄은 경멸과 포기의 눈빛만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정윤은 봄이 읽기를 시작한 것도, 불시에 멈춘 것도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