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반찬

소소한 일상 이야기

by Dodam Byul

식사를 할 때 밥보다 반찬이 많은 것이 좋다.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밥은 적당히 먹고 반찬으로 풍성하게 배를 채웠을 때 더 흡족한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반찬이 풍성하게 차려 나오는 한정식 식당에 가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느낀다. 어느덧 멀어진 일상이지만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이것저것 풍성하게 차려진 반찬 앞에서 따뜻한 밥 한 공기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식'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 없겠구나 생각하곤 한다.


반찬을 이렇게 잘 챙겨 먹게 된 배경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왜 글쓰기 모임 세 주제 단어 중 반찬이라는 단어에 반응했을까? 며칠간 고민한 끝에 그 이유는 부모님의 살뜰한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기 6년을 꼬박 살았던 충청북도 보은군의 한 주택. 그 집에서 보낸 시간이 나에게 많은 감성의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마당, 그리고 텃밭이다.

앞마당에는 장미덩굴이 있어 우리 집은 장미나무집으로 불렸고, 안마당에는 포도덩굴이 한쪽에 자라고 있었다. 처음 그 집으로 이사했던 해에는 시큼털털한 맛없는 포도열매가 열렸지만 그 집을 이사 나올 때쯤에는 제법 맛있는 포도열매를 매달았다. 텃밭에는 파, 고추, 가지가 심어져 있었고 파와 고추는 기본양념의 노릇을 톡톡히 했다. 많은 사람들이 물렁거리는 느낌에 싫어한다는 가지도 나에게는 일상적인 밥반찬으로 통했던 이유는 가지가 우리 집 텃밭에서 보랏빛 윤기를 뽐내며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화분에는 상추를 키우고 방울토마토를 심어 먹었다. 햇볕 아래 자라는 상추는 매일 뜯어도 또 나는 화수분 같았다. 뒷마당에는 호박을 길렀고, 여름이면 호박잎을 쪄서 밥과 함께 싸 먹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남은 음식들은 떠돌이 개를 마당 한쪽에서 키웠고 그 떠돌이 개의 차지였다.


부모님 두 분은 전라남도, 전라북도에서 태어나셨고 자연스럽게 남도식 상차림으로 우리는 식사했다. 늘 밥, 국 그리고 반찬과 함께 고기나 생선이 식탁에 올라오지 않는 날은 없었다. 김치도 배추김치, 파김치, 간단한 겉절이까지 하나만 올려놓고 먹지 않았다. 오늘은 찬이 없네라고 하는 날 조차도 김치 3종 세트, 계란찜, 가지무침, 김, 젓갈 두 종류, 상추와 쌈장이 함께했다.


그래서 자취를 처음 시작하고 한동안 어머니는 저 녀석이 밥은 잘 챙겨 먹었을까 걱정하며 반찬을 한 껏 챙겨주곤 하셨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에게 부모님 반찬을 살뜰히 다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찬은 금방 쉬고 물러졌다. 정성껏 만들고 깨를 뿌려 통에 담아낸 반찬들을 버릴 때면 괜히 눈물이 나고 속상했다. 시금치 한 단을 사서 무쳐본 적이 있다. 분명 많았던 시금치가 한 번 데치고 나니 한 주먹도 남지 않았다. 저 반찬통을 채우려면 재료를 다듬고, 씻고, 조리하고, 간을 보고, 품이 참 많이 들었을 텐데 하는 속상함이 들었다.

그렇게 반찬을 받아오지 않았고 '조금만 주세요.', '딱 이 반만 가져갈게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몰래 한 반찬을 더 챙겨주시고, 사 먹을 수 있는데도 과일이며 얼린 떡까지 바리바리 챙겨주셨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했고, 환절기면 감기를 달고 살았고, 조금만 무리하면 열감기를 앓던 자식이 혼자 독립해 산다는 말에 아버지는 장을 봐 재료를 다듬고, 어머니는 살뜰히 조리해주셨을 반찬. 그 반찬의 힘으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쓰며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말하지 않고 반찬을 가져다주셨던 날, 이렇게 많이 가져다주면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될까 봐 속상한 마음에 말은 짧아지고 의미를 다 담지 못한 채 '제발 이렇게 말도 없이 가져오지 말아 달라'라고 소리치며 싸우게 됐다. 분명 마음은 다 알고 있는데 그 마음만큼 말이 나가지 못했다. 날 낳아 키우던 그 나이의 부모님보다 지금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아직도 그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멀었다.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식습관은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몸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식습관은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몸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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