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알고리즘, 그 공백을 점유한 자
왕정, 귀족, 성직자, 세금 시스템, 정치, 경제 등 혁명 이후 프랑스는 기존의 많은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즉, 프랑스의 기존 알고리즘 구조가 형태를 잃은 것입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이 붕괴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팽창하고 있던 요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병력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내부 문제를 넘어 인근 유럽 국가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고, 이웃 국가들은 이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신분 구조가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혁명 시스템을 억제하기 위해 대프랑스 연합이 구성되었고, 1792년, 프랑스와 대프랑스 연합은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전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병력은 급격히 팽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 이후 프랑스 군대는 균일한 전력을 가진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성과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구조였고, 같은 군대임에도 전선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귀족 출신의 경험 있는 장교들은 대부분 숙청된 상태였고, 병력은 급조되었으며, 훈련 역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 장교의 부대가 예외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며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은 16세에 장교로 임관하여, 24세가 되던 1793년에는 준장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6세에는 파리 반란을 진압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냈고, 27세에는 이탈리아 방면군 총사령관에 오르는 이례적인 승진을 이루게 됩니다. 그의 빠른 승진은 단순한 개인 능력의 결과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혁명으로 기존의 계급 구조가 붕괴되면서 오직 성과로만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파괴되고 재구성된 알고리즘의 빈자리를 가장 먼저 점유한 인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총사령관이 된 이후에도 빠르고 확실한 성과를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심각한 부패와 함께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시점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던 시스템은 군대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폴레옹은 어떤 결론에 도달합니다. 기존 체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브뤼메르 쿠데타로 이어지게 됩니다. 쿠데타는 성공했고, 이 시점 이후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는 평민 출신의 장교, 나폴레옹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집권을 계기로, 프랑스에 잔재했던 중세 알고리즘은 확실하게 파괴되고 재구성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