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탄생과 두 라이벌의 다른 결과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남미는 스페인에 의해 빠르게 장악되었고 은과 금을 중심으로 한 자원 수탈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반면 북미는 단일 세력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경쟁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미와 해상 네트워크의 통제권을 둘러싼 충돌이 발생합니다. 1756년, 최초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7년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763년,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북미에서 프랑스를 밀어내며 지배력을 크게 확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됩니다.
영국은 전쟁 수행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 식민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한 피지배 집단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영국의 법과 질서를 따르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동일한 구조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리는 부여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인간이라는 정보처리장치의 자기유지 알고리즘이 위협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회로마저 자극되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긴장은 점차 고조되었고, 1770년 보스턴에서 영국군과 시민 간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됩니다. 시민들은 무장하기 시작했고, 민병대를 조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775년, 결국 영국 정부와 식민지 간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미국 독립전쟁입니다.
이 소식을 접한 프랑스는 즉각 반응합니다. 프랑스는 7년 전쟁에서 패배하며 영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상태임에도, 스스로를 여전히 유럽의 중심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패권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는 독립전쟁을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고, 열악한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시작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상인을 통해 무기와 화약, 자금을 우회적으로 공급했고, 1778년에는 미국과 동맹을 체결하며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는 육해군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되는데요. 특히 해군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프랑스 함대가 해상을 봉쇄하면서 영국군은 완전히 고립됩니다. 결국 영국군은 항복했고 전쟁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 종료됩니다. 그리고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이 승리는 공식적으로 확정됩니다. 이와 함께 1776년에 선언된 미국의 독립은 비로소 국제적으로 완성됩니다. 미국을 지원한 프랑스는 분명히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이 전쟁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그 결과 국가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1780년대 후반, 프랑스의 총 부채는 약 40억 리브르를 넘어섰으며,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이 이자 상환에 사용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 역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는데요. 일부 시기에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프랑스보다 높았던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두 국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영국은 높은 신용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그 자금을 산업과 해상 네트워크 확장에 투입함으로써 성장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지속적으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구조가 없었고,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채는 축적되었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같은 전쟁이었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지요. 영국은 전쟁의 결과를 시스템으로 연결했고, 프랑스는 전쟁의 결과를 비용으로 떠안았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곧 전혀 다른 미래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