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알고리즘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멸망하기 직전, 영국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1694년 영란은행을 설립한 것인데요. 영국은 영란은행을 통해 의회가 국가의 신용을 보증하고 국채를 발행하는 구조를 형성하면서 신용을 강화하고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은행의 연산방식에 맞게 국가의 구조 자체를 바꾼 셈입니다. 이렇게 가장 강한 신용을 가진 국가가 형성된 것이고, 유럽 금융 자본 역시 점차 런던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영국이 간파한 것은 금융 시스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8세기, 증기기관을 통해 생산 방식을 개량한 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됩니다. 영국은 발전된 금융 구조를 이용해 발명가에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개량된 생산 방식이 실제 시장에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영국은 잉여 상품을 해외에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의 마진은 네덜란드의 교역 산업을 능가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약 1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상선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8천 척 규모의 상선을 가진 영국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시작합니다. 성공이 증명된 영국의 섬유 산업과 운송 산업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고, 운용에 필요한 석탄과 철강의 수요 역시 급증하게 됩니다.
이것은 전쟁과 약탈의 방식 자체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문명의 약탈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침략을 통해 영토와 그 안에 포함된 인구와 식량을 확보하고, 세금과 노동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산업혁명을 계기로 원재료와 시장, 그리고 해상 무역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 전쟁의 주된 목적이 됩니다. 영국은 이 방식으로 생산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세계에 판매했고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돈으로 해상 장악력을 더욱 강화하고, 다시 시장을 확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세계에는 산업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가진 국가가 여럿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을 동시에 갖춘 국가는 영국뿐이었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석탄과 철, 금융 시스템, 그리고 강력한 해군력입니다. 석탄과 철은 산업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와 소재를 제공했고, 발달한 금융 시스템은 발명과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을 공급했습니다. 여기에 세계 최강의 해군력이 더해지면서 영국은 해상 무역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와 소재, 자본, 그리고 무역 통제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되면서 영국은 산업혁명을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닌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구조적 변화로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것은 메타바이오 관점에서도 혁명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는 입력과 출력, 그리고 연산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간이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출력 장치가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에 새로운 형태의 하드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은이라는 전지구적 화폐시스템이 여러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면서 문명이라는 테두리가 형성된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산업혁명은 메타바이오 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