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멸망

근대 문명 알고리즘 완성의 신호

by 미친생각

금융가와 상업 네트워크가 빠져나간 이후, 합스부르크는 또 한 번의 결정타를 맞게 됩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전의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대양을 둘러싼 힘의 균형이 서서히 북해 세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유럽의 해상 질서는 점차 스페인에서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1648년,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제국 내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을 상실하게 되었고, 역사상 가장 많은 파산을 선언한 제국이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1700년,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오랫동안 작동해 온 문명 알고리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 고대 문명 알고리즘의 종언을 선언하고 중세의 시작을 알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사라지기 전까지, 국가라는 정보처리장치의 성공 공식은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군사력을 키우고 영토를 확장합니다. 확장된 영토에서 세금을 걷어들이고 그 세금으로 다시 군사력을 키웁니다. 이 순환 구조가 거의 2,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반복된 것입니다. 로마 제국도, 프랑크 왕국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들은 빠짐없이 이 공식을 따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에게 기대를 심어주고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입니다. 토지 보상이 약속되던 시대가 있었고, 이후에는 기독교라는 신앙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스페인 또한 이 공식을 학습하고 그대로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군사력을 유지하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고대에서 중세, 그리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문명의 정보 네트워크는 육상 중심에서 해상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해상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더 이상 창과 검만으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양을 건너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선박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역시 해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스페인은 약 130척에 달하는 함선을 동원하며 무적함대라 불릴 만큼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했는데요. 문제는 이 함대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었습니다.


당시 대형 함선 한 척의 가격은 스페인 국가 세입의 약 1% 수준이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단순 구매 비용만 놓고 볼 때, 현대 미국이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보다도 국가 재정에 더 큰 부담이 되는 규모였던 것이죠. 심지어 지금의 미국조차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대포와 총이 등장하면서 막대한 양의 화약이 필요해졌고, 선원 급여와 선박 수리, 항만 유지비까지 더해지면서 함대 유지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또한 전쟁 방식이 변화하면서 요새 건설 역시 필수적인 군사 비용이 되었습니다. 결국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고,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과 자금력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네덜란드를 상실했다는 사실은 스페인 합스부르크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화폐의 창출과 관리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은을 보유한 국가였습니다. 동시에 전 세계 은 생산의 절반 이상이 스페인의 손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압도적으로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스페인은 역사상 가장 많은 파산을 선언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앞서 언급한 전쟁 비용 증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의 파산 시기는 대부분 전쟁 시기와 겹칩니다. 1557년 첫 번째 파산은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던 시기였고, 1575년은 네덜란드 반란이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1596년과 1607년 역시 영국과 네덜란드와의 전쟁 중이었으며, 1627년은 30년 전쟁에 휘말린 시기였습니다. 스페인은 분명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전쟁 비용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여러 전쟁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게 됩니다. 자국의 자산만으로는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스페인의 전쟁 비용은 국가 세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고, 여기에 대한 이자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대량의 은이 유입되고 대출로 화폐 공급까지 늘어나면서,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됩니다. 지불 능력이 높아진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건비와 물가의 호가가 올라가기 시작하는데요. 이 말은 곧 노동력이나 물자와 같은 에너지를 조달하기 위해 필요한 화폐의 양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개별 정보처리장치는 기대 이하의 보상에는 노동력은 물론 물건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화폐 자체가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줍니다. 에너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대가가 제시될 때에만 공급는 것이죠. 그 수단으로 화폐가 이용된 것 뿐입니다. 이것이 화폐라는 에너지 청구권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문명은 더 이상 과거처럼 명령과 신앙만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호가가 성립될 때에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은행이 등장합니다. 은행은 미래의 가치에 대해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고, 신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상환 가능성과 위험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군사력과 정복, 그리고 세금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문명의 관점에는 완벽히 부합한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재정 구조와 국가 운영 방식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스페인은 더 이상 안정적인 채무자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금융가와의 관계까지 악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집니다. 결국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화폐를 통해 인간과 물자를 자유롭게 동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후계자 공백이라는 마지막 사건을 맞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전쟁 비용의 상승과 문명 알고리즘의 전환, 여기에 정보전과 은행 구조의 변화까지. 이제 근대 문명의 알고리즘은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과거의 문명 알고리즘과 작별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