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청구권이 문명 단위로 통합되기 시작하다
프로파간다를 시작으로 네덜란드의 반란은 점점 심화되었고, 스페인의 진압도 거세졌습니다. 1585년, 결국 안트베르펜은 스페인에 항복하고 점령당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당시 안트베르펜은 유럽의 금융과 상업을 대표하는 도시였는데요. 도시가 점령에도 불구하고, 금융가와 상인들은 스페인에 잠식당하지 않았습니다. 혼란을 피해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도시였으며 해상 무역이 발달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상업 활동에 맞춰진 정치 구조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금융가와 상인이 새로운 거점으로 삼기에는 매우 적합한 도시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동은 단순한 이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02년, 세계 최초의 공개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식회사의 등장으로 옵션과 선물 거래는 더욱 활발해졌고, 보험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금융 구조의 변화도 점점 가속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신대륙의 발견이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발견은 유럽 문명에 새로운 에너지 유입 구조를 만들어냈지만, 당시 항해 기술로 대서양을 오가는 항해는 매우 길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이 구조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으며, 17세기 초 평균 배당률은 10퍼센트 중후반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막대한 무역이 이루어졌고, 그 규모 역시 압도적이었습니다. 특히 향신료 무역은 유럽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수준이었습니다. 관련된 무역과 거래에는 수많은 선박과 인력이 투입되었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은 네덜란드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거대한 규모의 무역과 거래는 대부분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의 결제는 대부분 암스테르담 은행을 통해 이루어졌지요. 결국 암스테르담 은행과 동인도회사가 당시 유럽의 돈을 끌어모으는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의 돈이 한곳으로 집중되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럽에는 수백 종류의 화폐가 존재했고, 화폐마다 은의 함량이 달랐습니다. 즉 화폐마다 가치가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을 관리하는 일은 은행 입장에서 상당한 리스크였습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도입합니다. 바로 계좌 기반 결제 시스템이었습니다. 금과 은을 은행에 예치하고 실제 거래는 계좌 장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사실상 오늘날 중앙은행형 결제 시스템의 원형에 가까운 구조였습니다.
돈을 에너지를 거래하는 토큰이라고 본다면,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과거에는 에너지가 주로 국가 단위에서 순환됐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역이든, 상업이든, 농업이든 어떤 방식으로 국가에 에너지가 유입되더라도, 은행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전환되고 분배되거나 저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행은 이렇게 국가 간 에너지 호환을 가능하게 하는 기관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메타바이오라는 정보처리장치가 국가 단위에서 은행권 문명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고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