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최소 사양
인류 문명의 시작 시점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명이 유형의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하고 무리를 이루는 현상은 결국은 필연처럼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필연을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류는 단순히 연산능력만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거울신경계가 발달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거울신경계는 다른 개체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수행하는 것처럼 활성화되는 신경세포의 집합입니다. 이 회로가 존재함으로써 인류는 공감하고 모방하며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지요. 결국, 이런 성능으로 인간집단의 행동이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 상승이 가속화 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자신에게 도파민을 제공하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게 된 것 또한 거울 신경계가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능력들이 바로 무리를 이루는 데 필요한 핵심 기반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까마귀나 코끼리, 돌고래 등 다른 동물들도 거울신경계가 발달해 있지만 왜 이들은 문명을 갖추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인류가 거울신경계뿐 아니라, 문명 형성에 필요한 최소 사양 이상의 능력을 함께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전전두엽을 기반으로 한 높은 연산능력, 이족보행으로 자유로운 두 손, 정교한 손가락 움직임, 그리고 언어를 구사하기 적합한 신체 구조 등이 그 예입니다. 이 능력들은 정보를 해석하고 예측하며 의도적으로 출력하는 데 적합한 구조입니다. 도구 제작이나 언어와 문자 같은 의도된 정보 출력에도 완벽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IQ가 약 90으로 네 살 어린이에 해당하는 높은 지능을 가졌으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회성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교한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기에 복잡한 도구나 구조물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까마귀나 돌고래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한계를 지닙니다. 침팬지는 우리와 가까운 종이지만, 유전정보의 차이로 인해 신경계의 배선과 신체 구조가 다르게 구현되고, 전전두엽의 계획 능력·언어·정교한 도구 사용 능력에서 임계점을 넘지 못합니다.
저의 관점에서 보자면, 집단이 문명화 단계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하드웨어의 최소 사양이 존재하며, 이 최소 사양 이상의 성능을 갖춘 존재만이 국가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기원전 3500년경, 국가를 감당할 수 있는 최소 사양 이상의 하드웨어를 갖춘 호모 사피엔스라는 정보처리장치는 인류 최초의 국가인 수메르를 형성하게 됩니다.